목회자의 편지

목회자의 편지

Home   |   교회 소식   |   목회자의 편지

김 송 자매의 간증

Author
admin1
Date
2019-02-03 15:14
Views
67
목회자의 편지(758) 2019년 2월 3일

김 송 자매의 간증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나이트클럽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금의 남편(강원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큰 키와 남자다운 성격에 매료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제 우상이 되었습니다.
1991년 남편이 입대를 하고 정식으로 사귀게 되면서 7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내 사랑 송이, 내 마누라 송이, 내가 믿는 건 너와 돈밖에 없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남편은 제대 후에 여러 가수의 안무가로 이름을 날리더니, 클론으로 활동하며 인기스타의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의 노래 <쿵따리 샤바라>는 정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콜라라는 그룹으로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소속사와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신승훈, 박미경, 클론, 노이즈 등 소위 잘 나가는 스타들의 소속사에서 망한 가수 1호가 되었습니다.
저는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어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리쳤습니다.

2000년 8월, 남편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알콩 달콩 잘 살자”며 제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내게도 불행 끝, 행복이 시작하려나 보다’라는 마음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원하는 온갖 준수함을 갖춘 남편을 따라다니며 떼 부리는 기도를 한 줄도 모르고
분주함으로 주신 응답에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그 기쁨은 단 3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2000년 11월 9일 낮 2시경, 오토바이 세차를 하러 본가에 간다고 나간 남편은 집에서 1 km도 떨어지지 않은
사거리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다시는 걸을 수 없고 만져도 감각을 느낄 수 없는
하반신 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늘 안고 있던 두려움과 놀람의 사건이 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 착한 성품과 열심과 사랑의 힘을 믿으며 죽는 날까지 남편을 간병하리라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현실에서 남편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남편이었지만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니 제 속에서는 생색과 보상심리로 툭하면 이혼과
위자료를 요구했고,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를 운운하며 남편을 학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날개만 없을 뿐 나 같은 천사가 어디 있어?”하며 집밖에서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암으로 투병하시던 엄마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자식을 이 땅에 두고 먼저 가니 눈에 밟힌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니, 우리에게
“꼭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라” 하시고는 소천하셨습니다.

사실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유부남을 만나며 다른 가정마저도 파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택하여 20년 넘게 불교신자로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칼로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눈물로 회개하셨습니다.

저는 2006년 5월 말에 우리들교회에 처음 출석했습니다. 그때 김양재 목사님이 마태복음을 설교하셨는데,
설교 중에 “바람 피운 남편, 힘든 시댁, 힘든 상사, 힘든 사람들과 환경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내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도록 그들이 수고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이다”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귀가 뻥 뚫린 느낌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제 얘기를 아시고 말씀하는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의인을 구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키려고 오셨다”는
말씀에 ‘그동안 천사인 줄만 알았던 내가 바로 죄인이었구나’하며 저의 실체를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각종 양육을 받으니 더욱 이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망해도 남편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세상 왕을 원하다가 하나님의 복수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남편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부부목장에 가는 것이 기도제목이었는데, 2011년 2월 남편이 교회에 등록했고,
부부목장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8년까지 그동안 다섯 번의 시험관 아기에 실패했습니다.
거의 포기를 했지만 4년 뒤 남편에게서 “시험관 한 번 더 해볼까?”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시험관 아기 시술 끝에 자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영적
자녀까지 낳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김양재, 그럼에도 사랑하심. 두란노. pp. 4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