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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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는 삶(Ricket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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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11-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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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11월 4일

삐걱거리는 삶。

( 눅 5 : 5 ~ 11 )



토미 워커라는 목사님이 한 보육원(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 아이가 달려와서는
“내 이름은 앤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떠난 후에 잠시 후 다시 와서 또 다시 말했습니다.
“내 이름은 앤이에요.” 그리고는 다시 친구들에게 가서 놀다가 또 다시 달려와서 자기 이름을 말했습니다.
토미는 보육원 책임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가 자꾸 나에게 와서 자기 이름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아이는 부모가 버린 아이입니다.
몇 달 전 이 곳에 왔을 때, 이름도 없었고 생일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너무도 좋아하면서, 손님만 오면 찾아와서 자기 이름이 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미 워커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아이 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한 곡 만들었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주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주가 닦아주셨죠. (1절)
주는 내 아버지, 난 주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주가 들으시죠. (2절)” (Tommy Walker)

견고했던 의자도 세월이 흐르면 삐걱거립니다. 건강했던 사람도 큰 병을 앓고 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매사에 두려움이 앞섭니다. 한 때는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던 사랑했던 사람들도 삶에 지치면
상대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은 죄를 짓고 그런 죄가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 무기력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신이 교회를 떠났듯이 하나님도 자신을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 일에만 관심을 쏟고 살듯, 하나님도 분명 자신의 이름을 잊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은 답변합니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이사야49:14~16)

삭개오는 돈은 모았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강도가 지신의 돈을 노려 자신을 헤치고 재산을 다
빼앗아간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슬퍼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쓸쓸함이 늘 가슴에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나무 위로 올라가 있는 자신의 이름을 예수님은 불러주셨습니다. 집에 들어오셨고,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흔들리는 갈대라는 뜻의 시몬에게는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시몬은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이 되었습니다. 분노하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며 포악했던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신 이후로 변화되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으로, 죄인을 용서하는 긍휼의 사람으로,
오늘 죽어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감사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내면에 간직한 불은 그냥 스러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불꽃으로 피어오르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불을 붙여준 서로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해야 한다.”(알버트 슈바이처)

☞ 훌륭한 목수셨던 주님은 삐걱거리는 우리 삶을 다시 리모델링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좋은 만남, 겸손하게 ( 배우려 )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마11:29)

▷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요인 가운데 배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신 다음, 광야에서 40년 동안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노예 근성을 버리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의 교육을 통해서 위대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교육이란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삶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의 교육은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지혜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두 팔이 있듯, 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두 팔을 사용합니다. 일대일 제자양육은
각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서,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있지만, 순장과 순원은 서로를 섬기는 관계입니다.
♣ 예수님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배우는 삼각관계입니다.

부부 관계도 이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질 때 부부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배움이 가능합니다. 그 차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잘 배워야 잘 성장합니다. 올바로 배워야 반듯하게 성장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그 생활태도가 반듯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세가 비딱하고 마음씨가 휘어진 듯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쫙 펴져야 합니다.
옷감을 빨래하고 나면, 주름이 많습니다. 다리미로 열을 가해서 옷감을 눌러주면 그 주름진 옷감이
구김살 없이 평평하게 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그렇게 반듯하게 펴 주시는 분입니다. 깨끗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육하시고, 교육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꿈, 비전을 심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비록 삶이 삐걱거리더라도 예수님께 가서 기도하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우리 삶에 구겨졌던 부분들이 활짝 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위대한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영적인 스승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배움의 시작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학생은 선생님을 존귀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진도보다 선행 학습을
한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 안다는 거죠. 이미 배웠다는 오만한
자세입니다. 낮에 학교에 와서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학원에 가서는 열심히 집중하는 것이죠. 이런 학생들이 좋은 학업 성취를 거두기란 어렵습니다.

♣ 좋은 만남이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 나쁜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 인생을 망칩니다.
한쪽이 무너지는 고통을 낳습니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허물어지면 우리는 회복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자동차에 2만 개 넘는 부품 가운데 하나만 망가져도 자동차가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뼈가 200개가 넘습니다. 그 중 하나만 금이 가거나 부러져도 우리 온 몸은 고통을 겪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 험담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큰 유익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굉장한 선물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배우시고 성장하셨을까요?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눅2:46)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터미네이터처럼 성장한 성인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고, 자라고 성장하면서 배우셨습니다. 어떻게 배우셨을까요?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마주하고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경청한 것이지요.
또한 질문을 했습니다. 좋은 질문이 훌륭한 가르침을 이끌어 내기 때문입니다. 좋은 질문을 잘 하는 학생은
교수로부터 은총을 입습니다. 사랑받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적절한 때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해서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학생도 있습니다.

♡ 예수님은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성장하셨는데, 그 교육의 방향은 결국 예수님을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셨을까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2:52)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인생이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실패하던 삶이 성공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삐걱거리던 삶이 안정된 삶으로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허탕친 하루였습니다.
하루 종일 장사했는데, 매상이 없었습니다. 몸은 고생했는데 이익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수 천 번 그물을 던지고 거두어 들였지만, 그물 안에는 팔 수 있는 물고기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보면, 암컷이 잡히면 놔줘야 합니다. 수컷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컷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것은 잡지 못합니다. 결국 사이즈가 큰 수컷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돈 주고 사서 먹어야 합니다.

◈ 왜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은 걸까? 물고기들이 사람을 알아보나? 내 인생은 뭐가 문제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삐걱거린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을 만나면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곤 합니다. 인생이 과연 그럴까요? 인생은 공평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정직합니다.
뿌린 대로 거둡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나쁜 만남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속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열매는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마7:17~20)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를 보세요.
그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오랜 시간을 배웠지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 왜일까요?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념이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강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보다 낫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정확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의인인가, 죄인인가? 허물 많은 사람인가, 완벽에 가까운 인간인가? 그래서 가룟 유다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랑의 열매, 전도의 열매,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을까요?

그가 주님을 처음 만났던 날, 그는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5:8)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알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얼마나 더러운 생각들이 많은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겸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보자, 자신의 무능력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을 보자, 자신의 추함을 비춰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십니다. 더욱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날 잡은 물고기도, 배도, 동료들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가 고쳐집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합니다.

『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나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고,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던 여자 아이. 그러나 20세기의 기적이라 불리는 위대한 인물이 된 헬렌 켈러.
그녀 자신의 말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헬렌을, 전 세계가 손꼽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앤 설리번 선생이다.

언젠가 헬렌 켈러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야말로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수놓은
사람들이다. 친구들은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내가 지닌 한계를 변화시켜 아름다운 특권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상실의 그림자 속에서도 주저 앉지 않고,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친구들 중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 설리번 선생이다.

암울한 어린 시절, 늘 제멋대로였던 헬렌 켈러에게 사랑과 인내로 말과 글을 가르치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우쳐 주었던 설리번 선생은, ‘물’이라는 말 한 마디를 헬렌에게서 얻기 위해 7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쏟았다. 말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7년 만에 얻은 짧은 단어 하나였지만, 이 귀한 시작은
스무 살의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결국 설리번 선생의 사랑과 인내는
헬렌 켈러가 세계 최고의 학부를 마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이 기적적인 일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 주었다.

시작과 실패를 계속하라~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에게 늘 강조했던 이 말은 실패에 익숙해 있던 헬렌 켈러에게 희망을 주었다.
헬렌 켈러는 참으로 귀한 친구이며 스승이었던 설리번 선생에게 얻은 인생의 참 의미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과 나누는 생을 살다가 1968년에 숨을 거두었다.』
(존 맥스웰, 내 인생의 친구. 가치창조. pp. 20~22)

우리는 설리번 선생보다 더 훌륭한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막9:23)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으로부터 배우며, 그 배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런 사람과 동행해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좋은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휘청거리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반듯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37:23-24)




2. 내 인생을 ( 주님 )이 연주하시도록 맡길 때 견고하고 아름답게 변한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요21:18-19)

어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죽은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저 인간 그렇게 못된 짓, 교회에서도 나쁜 짓 일삼더니 결국 저렇게 벌을 받는구먼~. 쯧쯧쯧….”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의 장례식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사람들이 그의 삶을 추모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아름답습니다. 고결합니다.
숭고합니다. 위대한 승리로 기억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반드시 그런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시고,
그를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 (새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베드로는 삐걱거리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장모님은 아팠습니다. 그가 어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모든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심하게 부부 싸움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하고, 돈도 되지 않는 제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냐고 한 바탕 난리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의 아내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보니, 너무도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하루 하루 산다는 것이 기적이고,
예수님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 많다고.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 이 자체 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것이라고.
이제 나는 주님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로 두렵지 않다고. 황량한 사막을 걷는다
하더라도 겁이 나지 않고, 낯선 세계에 가서 선교하는 것도 괜찮다고. 나는 더 이상 인생을 도망 다니듯,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허무한 하루를 살고 나서 소주 한 잔으로 위로를 삼는 그런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루 하루를 가슴 설레는 삶, 하나님의 나라를 꿈 꾸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는 아내에게 누차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도 어느 날 예수님이 자기 친정 집에 오셔서,
친정 어머니를 치료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놀랐을 것입니다.

♣ 비틀거리지 않고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입지 않고 사랑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사랑은 수 많은 상처의 아픔 속에서도 황홀한 꽃망울을
피우는 기적의 사건입니다. 조지 스위팅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시카고의 무디 성경학교 학생이었다가
후에 교장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암에 걸렸습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삶의 모든 면이 휘청거렸습니다. 슬픔과 비탄에 잠겨 우울하게 보낼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기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 인생을 뒤바꿔놓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내가 처음 눈을 떴던 것은 시카고의 무디 성경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중병에 걸렸을 동안이었다. 당시 학교 의사는 즉시 수술을 해서 종양을 제거해야 된다고 말했다.
종양이 워낙 악성이었던 관계로 수술은 X레이 촬영을 서른 번이나 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나는 존슨 박사의 그 정직하고도 사랑에 찬 모습을 결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나에게 내 상태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아이를 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설명해주었다.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내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 나를 가르쳤던 교사 한 사람이 나에게
조그만 책자 하나를 보내왔다. 제임스 맥켄키(James McConkey)라는 사람이 쓴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쭉 읽어가면서 나는 하나님을 으뜸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그분의 사랑이 내 속으로 뚫고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질병, 병원의 그 고요함,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책자,
그리고 죽음의 가능성, 위대하신 의사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사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로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에로 나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셨다. 그것을 통하여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이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어 줄 수 있으리라는 가슴 벅찬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나의 병실 침상은 그대로 산 제사의 제단이 되었다. 나는 주님께 주님을 섬기고 싶은 깊은 열망을 고백했다.
그리고 인생의 그 어느 것보다도 주님의 뜻을 더욱 사모한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주님, 이 병실 침상은 저의 산 제사의 제단입니다.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저를 산 제물로 드리기 원합니다. 이제 주께서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저는 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통로로 드립니다.

그 때 그 위기를 넘긴 이후로 나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았다. 아이도 넷이나 낳을 수 있었다.
후에 그 존슨 박사는 죽기 직전에 나에게 짤막한 글 하나를 보내왔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기적을
베푸셨었음을 잊지 말라고 씌어 있었다. 그의 말이 옳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당신의 사랑에 대한 의식을 깊이 새겨넣어주셨다는 것이다. 분별하는 사랑,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랑,
감미로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랑, 진리와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랑,
바로 이러한 사랑을 말이다.』 (조지 스위팅,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Catch the spirit of love
by George Sweeting. 두란노. pp.18-19)

♠ 우리의 삶이 삐걱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내가 온전하지 못한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생을 연주하면, 서툴고 듣기에 거북한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어느 날, 성령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임재하신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그의 순종하는 마음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을 때에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만해지지 않았고, 한곁같이 겸손했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들이 주렁 주렁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15:5)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15:8)

베드로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등 뒤에서 배의 키를 함께 잡고 앞을 바라보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삶은 사랑이 넘치는 풍성한 삶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예언하셨던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진정한 어부가 된 것이지요. 나를 통해 한 사람이 구원받는다면
이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 여러분은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연주해 주시라고 맡기시겠습니까?



[ 기 도 ]


하나님,
자꾸 실수하고 반복해서 넘어지면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저희들입니다.
배움의 중요성,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즐겁게 듣고,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그래서 삐걱거리던 저희들의 삶이 다시 균형을 잡게 하여 주시고
균열이 생겼던 인간 관계에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여 주소서.
큐티(Q.T.)를 다시 시작하게 해주시고,
주님께서 연주하시는 아름다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