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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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God's g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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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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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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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10월 28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 엡 3 : 1 ~ 13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 손으로 태어났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벌거벗은 상태가 아니고, 몸을 감싸는 따뜻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누군가 만들어 준 옷입니다.
우리는 개인 전화기도 가지고 다닙니다. 내가 잠 잘 방도 있습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도 갖추고 삽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통해서 새로운 정체성,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은총을 입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러한 은총을 입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과 고독감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이 놀라운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빈 손이었던 삶에
수 많은 선물로 가득한 삶으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은 죄가 많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 선물을 받아 누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거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나는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어~.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물려줄 유산도 없어.
나는 높은 공직에 오른 적도 없고, 교회를 건축한 적도 없어. 그 동안 알고 있던 것들조차 잊혀져 가고,
그나마 건강했던 몸조차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나는 부끄러움만 남은 불행한 삶이야.’
어떤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사람이 몇 십년을 살게 되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야 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그동안 배운 지식과 사람들의 조언, 그리고 아이디어와 지혜를 총동원하여 해결해왔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루어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과정을 잘 견디어 온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보면,
지금 밥을 굶고 있습니까? 아플 때 먹을 약이 없습니까? 옆에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습니까?
우리는 대단히 많은 것을 소유한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가난한 나라에 가서 선교를 해 보시면, 아무리 아파도 먹을 약이 없는 현실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 재정이 없기 때문에, 보건소는 있지만 보건소에 약이 없습니다. 굶어 죽는 아이들이 수 없이 많은데도,
복지 예산이 없어서 그냥 굶어 죽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면 의식주를 해결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아무 잘못없이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히고 몇 년 동안 이어지는 재판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인권 변호사를 고용하여 당장 감옥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겠지만,
그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웬일인지 평안했고, 감사했습니다. 그에게는 불평이나 원망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넘치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는 소유한 돈이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부자인 것처럼 마음이 풍성했습니다.
풍성한 은혜, 넘치는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고독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주님과 동행하고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믿고, 자신도 믿음으로 승리할 날을 기다리며 기뻐했습니다.

☞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 사람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받은 선물들을 알려주십니다.



1. 나는 하나님의 ( 사랑 )을 받았기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엡3:18-19)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 중 가장 좋은 선물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찾아오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단 말인가?
바울은 본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이단의 괴수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단의 괴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적대적 입장에 있던 그 예수가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려고 찾아왔습니다.
왜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했는지,
바울은 성경을 다시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쳐서 복종하셨던 예수님을 날마다 생각합니다.
인간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를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죽는 순간까지도 기도하셨습니다.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으셨지만, 도리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인간끼리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은 인간이 지은 그 많은 죄를 책임지시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그것도 가장 끔찍한 고통인 십자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는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 ‘내가 누구이기에, 존귀하신 예수님이 저런 고통을 당하신단 말인가?’
바울의 의식 속에서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도 위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도 순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사랑의 폭이 광대했습니다. 그 사랑이 바울의 온 몸과 마음, 상상력의 세계까지도 감싸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신만 알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알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표현합니다.

♡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의 심령 깊은 곳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환경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차가운 환경,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죄수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차가운 편견.
이런 것들보다 예수님의 사랑은 더욱 따뜻하고 뜨거웠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늘 갈등을 일으킵니다.
율법주의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입니다.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율법 자체는 필요한 것이지만, 율법이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현실 사회에 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법을 집행하기 이전에 우리는 법을 왜 만들었는지 그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정신은 공존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요, 함께 살기 위한 사랑입니다.
살인하는 말라는 법은 그 근본 정신이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법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사실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대한 만큼 성공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쓸 수 있는 만큼 많이 모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충분한 건강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요5:24)

예수님은 우리가 죽으면 끝날 그런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갈 존귀한 자녀라고
거듭 알려주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요6:47)

예수님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사도 요한도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1~13)

♠ 우리로 하여금 힘든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지치고 쓰러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텅 빈 것 같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돈보다, 건강보다, 자녀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 하나님입니다.



2.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 할 일 )을 주셨기에 우리는 감사한다.



“나는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이 작용하는 대로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의 선물을 따른 것입니다.”(엡3:7)

모든 사람은 성장하면 할 일이 주어집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성숙한 사람에게는 할 일이 주어집니다.
모든 사람은 쓸모 있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쓸모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약한 사람에게는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아직 어려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일하라고 하지 않고 돌봐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사명감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일할 수 있는 만큼 성인이 되었고, 그만한 건강도 있으며, 일하려는 의욕도 있는데,
그에게 일하라고 불러주는 회사가 없다면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사람은 일할 때 행복합니다. 의무감으로 일하는 사람,
마지 못해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쁨이 없습니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노예에게는 일하는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자율적으로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스스로 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누가 시켜야만 일하는 사람은 종속적인 사람입니다. 주체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합니다. 집안 일도 즐기면서 하면 더욱 신이 납니다.
회사 일도 즐겁게 하는 사람에게 성취감도 오고, 인정도 받습니다.
교회 일도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넘칩니다. 즐기지 못하고 그냥 열심히만 하는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집니다. 일은 잘 하는데 기쁨이 없는 사람을 가끔씩 만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사례) 김연아 선수는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입니다.
그녀가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 코치입니다.
그런데 윌슨 코치가 김연아 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받았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승부욕이 가득한 탓에 얼굴 표정이 심각했고, 긴장된 표정을 떨치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피겨 스케이팅은 기술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표현 부분도 중요합니다.
윌슨 코치가 보기에, 저렇게 긴장된 표정으로 무슨 춤을 주겠나 싶더랍니다. 그러다 보니 동작은 힘은 있지만
부드러움이 없었습니다.

윌슨 코치는 김연아 선수에게 일단 무작정 즐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농담도 하고,
긴장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 윌슨 코치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 6개월, 1년이 가면서
김연아 선수는 긴장하지 않고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게 되었습니다. 즐겁게 연습을 하던 어느 날,
김연아 선수 안에 응어리진 어떤 것이 풀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의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김 선수는 누구보다 여유롭고 아름다운 표정으로
연기를 하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훗날 윌슨 코치에게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단지 그녀 스스로가 즐기는 법을 터득하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는 그리스도인들 아닙니까? 예수님은 세상을 이미 승리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 승리하신 기쁨, 주님은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승리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이 환경을 초월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돈은 여전히 부족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늘 쇠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 관계도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승리하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내 인격으로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를 악 물고 버티면서 주님께서 언제 오시나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감사하며 기다립니다.
항상 기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아룁니다. 나의 부족한 면들을 주님께서 채워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살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회사 일이든지, 교회 일이든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벧전4:11)



3. ( 고난 )조차도 감사하는 이유는 주님을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서, 여러분이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엡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 당하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커다란 낙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에 실패하신 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실패한 메시야라고 여긴 것입니다. 주님은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했더라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시고, 그 고난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은총의 길, 축복의 길,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도 힘드셨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이 고통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맺음을 잘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삶이 너무 힘들어지면 끝맺음을 잘 못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의 마무리, 한 달의 결산,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헨리 클라우드가 쓴, 『끝맺음에 서툰 당신에게』(교보문고. P.25)를 소개합니다.

『끝맺음을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에서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똑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 끝맺음을 잘하고 경험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과거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행동 패턴을 극복할 수 있다.

끝맺음은 삶의 모든 면에 속해 있다. 끝맺음을 잘하면 삶의 시기를 적절히 통과하게 되며,
고통을 끝내고 더 많은 성장을 이루어 개인적인 삶의 목표와 비즈니스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끝맺음은 희망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에 도달하게 한다.』

여러분, 혹시 실패했습니까? …… 마음이 아프지만 인정을 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그냥 잃어버리시면 됩니다.
여러분, 혹시 돈을 뜯겼습니까? …… 집착하고 고민을 계속하면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없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마무리를 잘 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던 분입니다. 바닷가에서 받은 첫인상보다
상처입은 몸,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로 승천하시는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우셨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굴곡마다 매듭을 잘 지으셨습니다. 매듭이 있어야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냥 쌓아놓고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여인이 유혹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감옥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그래도 매듭을 지을 줄 알았습니다. 에스더는 소수 민족인 자기 동족이 진멸당할 위기에서,
죽으면 죽을 것이라고 각오하고 매듭을 지었습니다. 대나무에 매듭이 있어서 쭉 쭉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바울은 환난을 겪었지만, 불평하는 것으로 사역을 매듭짓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고난조차도 달게 수용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받을수록 예수님을 더욱 사랑했고, 주님을 닮아가는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 기 도 ]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늘 무엇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부족한 저희를 사랑해주시고, 베푸신 은혜를 구체적으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나를 향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바울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일할 때도 내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일하게 하소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