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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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Wise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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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10-2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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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10월 21일

지혜로운 사람。

( 마 21 : 23 ~ 32 )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좋은 사람도 만나고 나쁜 사람도 만납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됨, 인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좋은 사람은 아름다운추억을 남겨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사모하며, 좋은 성품,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음의 4가지 금언을 잘 지키라고 합니다.
(첫째) 남을 헤치는 말은 일체 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 자신이 올라갈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을 헐뜯는 말은 결국 그 말을 하는 자신의 인격을 헐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더구나 나와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을 매도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런 부정적인 말, 타인을 모함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충고는 하지 말라.
요리를 하면서 옆 사람이 물어보면 그 때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
그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타인의 자녀 양육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기엔 며느리의 자녀 교육 방식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함부로 조언하지 말 것입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본인이 요청하기 전에는
함부로 충고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셋째) 모든 일에 불평하지 말라.
불평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처럼 짜증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싫어지는 유형입니다.
불평하면 자신의 기분만 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기분까지 망칩니다.
불평은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멍들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자 그 분위기가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불평 가득한 사람들을
죽이시겠다고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조차도 화나게 만드는 것이 불평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 설명을 너무 길게 하지 말라.
좋은 제품이라도 설명서가 너무 길면 아예 읽고 싶지 않습니다.
선물을 받을 때, 상대방이 설명을 많이 하면 차라리 안 받고 싶어집니다.
엄마의 사랑이 아무리 좋아도 말이 너무 많아지면 싸구려 잔소리로 전락합니다.
고급 사랑은 묵묵히 실행하지요.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입니다.
설명은 조심스럽게 하고, 절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 지금 예수님은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설명 대신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겠다고 거짓말로 대답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신령한 지식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진리를 말한다 하더라도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귀한 진주를 개한테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진리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설령 진실을 안다 해도, 아는 것을 진실하게
실천하지 않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1. 천박한 지식은 ( 하나님 )을 멀어지게 하고, 심오한 지식은 가깝게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잠9:10)

(사례) 어느 유명한 배우가 자신을 위해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는 외모도 멋있었지만, 음성도 좋았고
말솜씨도 탁월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에게 대본이 주어지면 그는 그 대사를
멋지게 읊어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날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공개적으로 요청하자 하객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요청합니다. 갑작스런 요청에
이 배우는 뭘 읊을까 생각하다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편 23편을 암송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사용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중 저음의 묵직한 목소리로 시편 23편을 낭송했습니다.
그가 시편을 낭송하는 동안 눈을 감는 사람들도 있었고,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편 23편 낭송이 끝나자 사람들이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 배우는 박수갈채를 받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 자리에 연세가 지극하신 목사님 한 분이 참석해 계셨습니다.
이 배우는 갑자기 그 분께 부탁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파티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목사님을 소개했고, 다시 한 번 낭송을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그 목사님의 낭송에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나이가 많아서 음성도 껄껄하고 다듬어 지지도 않았습니다. 발음도 좋지 않아 중간에
실수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세 높으신 목사님은 눈을 감고 자신이 사랑하는 시편 23편을 암송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새번역)

그 파티에 모였던 사람들은 목사님의 낭송을 들으며 한결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때 유명한 배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 ‘나는 시편 23편을 알고는 있지만, 목사님은 믿고 계시는구나~.
나는 시편 23편을 읽고 있지만, 목사님은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계시는구나~’

예수님은 지금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양쪽 다 평생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단절되고, 솔직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 바로 그 차이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확신했지만, 그들은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당 안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 대가로 뒷돈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습니다.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의 테이블을 둘러 엎습니다. 비둘기 하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내시며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21:13)

다른 여인이 이웃집 남자와 바람 피는 모습은 내가 팔짱 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지켜만 볼 남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가 진정한 지혜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천박한 지식은 하나님을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아는데 지식으로만 알고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속 마음을 아는 것이 바르게 아는 것이요, 타인의 말만 듣고서 아는 것은
천박한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아십니다.
인간들이 죄를 짓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며, 결국 죽음의 공포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죽은 후에도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고통받게 되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을 때부터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사해줄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심판이 아니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은총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예수님은 삶 자체가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봉사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생활하시는 모습을 한 장면만 보실까요?
▷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21:14)

☞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아침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쁘게 들으십니까?

♡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십니까?
노후 계획을 하나님과 의논하십니까?
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이 목숨을 희생하셨다는 이 사실에 감격하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지혜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느끼는 사람만이 날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우리는 겸손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가을에 하나님을 좀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2.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 인격 )이 변한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가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마7:24)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시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싶어하시는지 그 간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사랑으로 아픈 환자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주는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는 것과 사는 것이 일치하셨던 분입니다.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셨던 분이고,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셨던 분입니다. 다양한 병자들을 이해하셨고,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도 병자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아파서 고통받는 환자를 고치려고 가다가
그 환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주님은 그 죽은 자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가셔서 이미 죽은 환자를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문둥병 환자와는 그 당시 누구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둥병 환자를 어루만져 주셨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소외당한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란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의 제자들이 찾아가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바로 그 분인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질문합니다. “당신은 메시야, 구세주인가, 아닌가?” 정체를 알려달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11:4~5)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너희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그토록 선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수로 죽으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왜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토록 미워했을까? 죽일만큼.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그 길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셨을까? 예수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나타나면 약속한 시나리오대로
그를 모함하고, 고소하여 그를 법정에 세우자. 그리고 적법한 재판 과정을 생략하고, 그를 빨리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려는 사람들의 계획을 예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눅9:51)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 왜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사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 욕심 때문에 거역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곧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여도,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를 이 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곳에 와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묵상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욕망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온 몸으로 실천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아침에 큐티(Q.T.)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내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내 판단대로 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인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에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악함을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기에 겸손히 따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어지러워진 성전을 보고 깨끗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시켜 진정한 성전, 진정한 예배당, 진정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 이 모임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온 몸을 던져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으로 인해 난처해진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었습니다.
성전은 더러워져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눈감아주었는데, 자신들의 체면이 구겨졌습니다.
위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할까 고민합니다.
대책을 의논합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저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서 뭔가 얘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다가 던진 질문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21:23)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고 했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혜를 얻지도 못했습니다.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시고, 진실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솔직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대화도 나누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어리석었기 때문입니다. 위선의 탈을 쓰고, 가면을 쓴 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해지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무서운 것은 행운의 결핍 또는 행복의 결핍이 아니라, 지혜의 결핍이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있어서 노년은 겨울이나,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노년이 황금기이다.”

☞ 여러분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으십니까?

배우려고는 하지 않고, 옛날 일만 되풀이하면서 고집스런 노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유연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늘 배우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노년이 황금기라고 했습니다. 이런 전성기를 맞이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 기 도 ]


하나님,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날마다 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 온유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배우게 하여 주시고
매 달 책을 가까이 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여 주소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싹을 내려서 아름다운 인격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