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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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God's pro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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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10-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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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10월 7일

하나님의 약속。

( 히 6 : 9 ~ 15 )



여러분은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입니까?
우리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수 많은 약속들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에 시계가 울립니다. 그 알람은 현재의 시각을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킵니다.
학교에 가면 수업이 열립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약속한 수업이기 때문입니다.
식당은 예약합니다. 자동차들은 교통법규를 지킵니다. 여행 가면 예약한 방에서 잡니다.
대금을 크레딧 카드로 결재합니다. 비행기를 탈 때 우리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예약된 좌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표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 약속 때문에 가치를 지닙니다.

물건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일상생활, 사랑의 서약, 노후 연금까지,
인간의 삶은 약속으로 시작해서 약속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약속(계약, 조약)도 이처럼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나 더 소중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믿음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어 불안해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건강할 때, 우리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미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순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믿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고, 그 약속을 믿고 지금 누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례) 옛날 어느 마음에 인품과 덕망이 높은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거지들이 아침
저녁으로 깡통 하나씩 들고 와서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이 부자는 워낙 마음 씀씀이가 좋아서
늘상 식구 수에 비하여 밥을 많이 짓도록 했습니다. 걸식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7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오들오들 떨면서 밥을 얻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보통 거지들은 깡통 하나씩 들고 오는데, 이 아이는
등에 낡아빠진 병풍을 걸머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는 그 아이를 불러서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죽은 자기 친구였습니다.

앞뒤 사정이 궁금하여 거듭 물어봅니다. “너의 아버지는 가산도 많았고, 형들도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너의 이 꼴이 대체 어찌된 영문이냐?” 아이는 대답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곧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큰 형님 댁에 가서 살았는데,
얼마 후 작은 형님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얼마 후 큰 형님에게 가라고 해서 결국 이 집 저 집
왔다갔다 하다가 쫓겨나서 이렇게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말합니다. “너의 아버지는 지혜롭고
덕이 많은 분이셨다. 유산도 많았을 터인데, 너는 아무 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었느냐?”
아이는 대답합니다. “네. 제 아버지는 형님들에게는 땅도 주셨고 집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낡아빠진 병풍 하나만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꼭 가지고 다닙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마음 속에 짚이는 것이 있어서 병풍을 칼로 찢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속에는 땅 문서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형들의 사람됨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는
어린 막내의 몫으로 재산을 준다면, 자신이 죽은 후에 다 빼앗기고 말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자식에게 병풍만을 남겨준 것입니다. 언젠가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을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지요.
이 부자는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서 땅문서를 아이 앞으로 둘려주었고, 그가 장성할 때까지 훌륭하게
키워주었다고 합니다.

☞ 현실의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일깨워 주시면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1. 주님의 약속은 미래적 ( 현실 )이다. 가장 확실한 미래이고, 성취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Amen)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고후1:20)

어느 여인이 결혼 생활 10년 만에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혼까지 하게 되었느냐고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것 같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전화 한 통 없이 밤 늦게 들어오더랍니다. 그녀는 그래도 정성껏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자, 그녀는 지쳐갔고, 자신이 수고한 노력들이
아무 쓸모없는 짓이었다고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반복된 생활에
그녀는 지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이혼했습니다. 이제 저녁에도 누구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마음이 저녁마다 허전하다고 합니다. 누군가 꼭 올 것만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고 이런 넋두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다릴 사람이 있을 때가 좋았구나~.”

▷ 여러분은 공감이 되십니까? 오래 전 어느 권사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속 썩이는 남편이라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공항에 도착하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불행합니다.
집에 가면 가족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기다립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기다립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기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열 명의 신부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신부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주님과 내가 만나는 날, 천국에서는 결혼 잔치처럼
즐거운 파티가 열리는데, 그 기쁨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월은
신랑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잘 기다려서 신랑이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다가 지쳐서 더 이상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기다릴 가치가 없는 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허무한 사람>입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한심한 사람>입니다.

☞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공한 사람입니까, 실패한 사람입니까? 허무한 사람입니까, 한심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쌓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16:21~22)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말씀이 신약성경에만도 318회나 나온다고 어느 성경주석가는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됩니다. 성경 마지막 장이 요한계시록 22장입니다.
천사들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참되다.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에게 곧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시려고, 자기의 천사들을 보내셨다.
보아라, 내가 곧 오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라.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계22:6~7)

주님도 다음과 같이 약속했습니다.
○ “보아라, 내가 곧 가겠다. 나는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간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계22:12~13)
○ “이 모든 계시를 증언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계22:20)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오는 미래를 미리 예상합니다. 상상력으로 그 입체적인 미래를 바라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학생은 무더운 여름에도 해수욕장으로 놀러 다니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합니다.
다가올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내일의 영광을 위해서 오늘 땀을 흘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동물은 약속을 할 줄 모릅니다.
후진국에 가면 사람들이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떤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더니,
현지 사람들과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일 공사장에 와서 일하겠다고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답니다.
고아원 지으라고 건축 자재를 사주었더니, 그 자재를 팔아먹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공사를 하게 되어
계약금을 조금 주면, 그것을 받고 달아나서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사람만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한 약속을 한 번도 어기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약속할 수 없고,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지키지 못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만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날마다 기억하면서, 오늘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다가올 미래를 믿고 오늘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현재는 좀 괴로워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은 더 나은 미래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정도의
고난은 참아야 합니다. 바로 저 앞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 캘빈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하나의 말씀을 스물 다섯 번(25회)이나 외웠다고 합니다.
▷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롬8:18)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그는 또 이 말씀을 외쳤습니다. 외고 또 외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소망을 품고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은 것이지요.

소망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면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눈을 감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찬 미래가 보입니다.
신뢰할 만한 분을 믿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소망 없이 살면서 앞날은 모르니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입니까?
-지금 현재도 중요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까?

▷옛날이 좋았다고 하면서, 술만 마시며 옛날 얘기를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힘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고 하면서,
현재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넉넉히 극복하는 사람입니까?

◇나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각 사람은 같은 열성을 끝까지 나타내서,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히6:11~12)




2. 소망을 품으라.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약속 )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분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하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히6:13~15)

약속이란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다시피 한 쪽만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쪽 모두가 약속을 이행해야 실효성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이 말을 듣는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대단히 흐뭇해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자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다린 지 24년.
이제 아브라함은 남자로서 자식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는 몸의 경수가 끊겼습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육체적인 소망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좌절감입니다. 절망감 뿐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아들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게 하신 후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그 날 신방을 다시 차렸습니다. 분위기 있는 저녁을 아내와 함께 보낸 후에, 잠자리를 같이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기가 막힌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버려서 구덩이에 던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낯선 외국 땅 그 곳에서 그는 종살이를 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건만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을 계속해서 유혹했습니다. 그 유혹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감옥에 가게 됩니다. 칠흑 같은 감옥에서 2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 감옥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망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거절하신 것이 아닙니다.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때가 되자, 요셉을 역사의 무대로 등장시키셨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요셉이 가족으로 버려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에스더>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슬프고 또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하만 때문에 수산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을 도륙할 날짜까지 정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마음을 먹고 왕 앞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응답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렘33:3)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나를 간절히 사랑하니, 내가 그를 건져 주겠다.
그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를 높여 주겠다.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
내가 그를 만족할 만큼 오래 살도록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겠다.”(시91:14~16)

☞ 나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9~13)

우리가 나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거나, 경험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을 언제나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 왜 그럴까요?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내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더 좋은 생각을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지 못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늘이 땅에서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사55:8~11)

[적용]

♥ 여러분 중에 요즘 꿈도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사시는 분이 계십니까?

▷ 여러분 중에 요즘 미래가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이 계십니까?

♤ 여러분 중에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술을 마시거나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 여러분 중에 극단적인 생각, 극단적인 결말을 자주 상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사41:13)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의 말씀에, 우리가 대답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는 사람의 말을 믿고 살다가 실망도 하고 배신도 경험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또 다시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지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고
이루어질 것을 믿기에 이제부터 저희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꽉 붙잡게 하여 주소서.

아침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즐겨 듣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고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며 살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오른 손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