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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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극복하는 방법(Ways to overcome your lonel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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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09-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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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9월 30일

고독을 극복하는 방법。

( 욥 42 : 1 ~ 17 )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외롭고 삶이 허무하다고 느낄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면 내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고민은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보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상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삶이 만족스러울 때보다는 불만족스럽고 힘들다고 느낄 때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고,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던 사람은 욥(Job)일 것입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것도 동방에서 가장 부자였던 그였기에 잃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녀 10남매를 한 날에 모두 잃었습니다. 아내도 그를 욕하고 떠났습니다.
그에게 마지막 남아 있던 건강마저 그는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옛 친구들 몇 뿐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 고문에 가까운 질문을 해댔습니다. 그는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상실감과 고독감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박사는 많은 현대인들이 정서적 고립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했던 그는 현대인들이 고독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듭니다.
어느 날 젊은 부인이 자신을 찾아와 입원을 허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진찰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그 부인은 가족과 사이가 아주 나쁘며,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남편을 버리고
다른 애인을 따라갔으나 그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았습니다. 그녀는 친척도 친구도 없이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 두려워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한국은 1인 혼자서 사는
가구가 가장 흔한 가족 형태가 되었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티나 켈러(Tina Keller) 박사는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된다”고 말했습니다.

▶ 욥은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참고 견딘 사람은 복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욥이 어떻게 참고 견디었는지를 들었고,
또 주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여워하시는 마음이 넘치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크십니다.”(야고보서 5:1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그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나의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기도록 하여라.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과 의도를 헤아리신다. 네가 그를 찾으면 너를 만나 주시겠지만, 네가 그를 버리면 그도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역대상 28:9)

♡ 고독은 무엇입니까?
고독은 대용품에 의존하여 사는 삶에서 오는 영혼의 영양 실조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고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독이 오래 가도록 나를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독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나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주님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욥이 어떻게 고독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1.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욥은 ( 회개 )했다.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욥42:1~3)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42:6)

세상에서 고통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통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당하는 고통이 남들보다 더 심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이 겪었던 고난이 우리의 경험보다 더 심각했던 이유는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의인이 당한 고통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고통과는 다른 성격입니다. 대부분의 고난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자신의 무지와 부주의 때문에 일어납니다. 일을 잘못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런데 욥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과 친했던 친구들이 와서 토론을 하는데, 그 핵심은 인과응보의 원리였습니다.
세 친구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욥아, 네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런 나쁜 일이 생겼겠니?
너에게 이런 고통이 임한 것은 네가 그만한 나쁜 일을 범했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이제 너의 숨겨진 잘못과
죄악들을 모두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라.”

욥의 입장에서는 이런 논리가 더욱 깊은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당해야 할 도덕적 이유가 없었습니다. 의인의 고난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밝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욥에게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분노한 것은,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욥42:7) 하나님께서는 욥을 두둔하셨습니다. 길고 긴 변론의 최종 판결을
하나님께서 내리셨는데, 세 친구들의 논리가 잘못이고, 욥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욥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겪는 고난도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이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잔치가 끝난 다음날이면, 욥은 으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 자식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늘 그렇게 하였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욥1:5)

○세번째 특징은 그는 고난이 끝날 때까지도 내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친구들도 그 원인을 생각해보라고 다그쳤습니다. 욥도 자신이 왜 하루 아침에 이렇게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이유를 알고 죽으면 좋으련만, 죽어가는 사람이 그 이유를
모를 때 더욱 괴롭습니다. 욥은 너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의 생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왜 나를 낳으셨나? 왜 나에게 젖을 물리셨던 말인가? 그는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태어나게 하셔서 빛을 보게 하시고, 이렇게 쓰디 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을 생명을 주시는가? 이런 사람들은 죽기를 기다려도 죽음이 찾아와 주지 않는다.
그들은 보물을 찾기보다는 죽기를 더 바라다가 무덤이라도 찾으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길 잃은 사람을 붙잡아 놓으시고, 사방으로 그 길을 막으시는가?”(욥3:20~23)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 대하여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인과응보의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나는 옳다. 나는 의롭다. 절대로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론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질문하십니다.
“주님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셨다. 전능한 하나님과 다투는 욥아, 네가 나를 꾸짖을 셈이냐?
네가 나를 비난하니,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욥40:1-2)

욥은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내용에 단 하나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너는 내 판결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내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느냐?”(욥42:8) 이것이 하나님의 논점이었습니다.
욥과 세 친구들은 오랜 시간을 토론했지만, 그것은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율법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차원이란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계명은 아무리 많아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그렇습니다. 욥의 논리는,
“나는 하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았다”는 논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율법의 차원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죄 때문에 벌을 받아 죽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지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발을 형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이 받게 하셨습니다. 공의를 위해서는 처벌을 내려야 하고, 사랑을 위해서는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처벌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차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율법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벌하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마귀가 행한 짓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욥이 받은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난이든 축복이든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수단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탄에게 증명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셨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 왜일까요?
고난을 통해서 욥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야 생생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축복의 계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욥42:5)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과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던 잘못을 회개합니다.

▷ 논쟁하고 싸우는 가정, 법적인 문제로 각 자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교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욥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욥은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2.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웃을 ( 축복 )하고 사랑을 베풀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마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지고 가서,
너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번제를 드려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고,
어리석게 말하였지만, 내가 그대로 갚지는 않을 것이다.”(욥42:8)

♡고난을 이겨내는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거기에 대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 바르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 해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성숙해지고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됨의 변화, 성숙해지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축복 아니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지와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눈물을 흘립니다.
남들을 향해서 비난을 화살을 던지던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남 욕할 게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인식을 가집니다. 애통한 감정을 느낍니다. 슬프고 괴로워합니다.
기도하면서 내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용서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합니다. 가장 큰 기쁨입니다. 고요한 안정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 비록 고난이 왔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심각한데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순간에서도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믿는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과 죄성을 아시고, 내 회개를 받아주셨다.
나는 문제 해결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고난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이다.
내 생애가 끝나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영원히~.’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난하는 것입니다.
♤ 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첫째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두번째, 남의 부족한 점만을 바라보느라 정작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는 교만에 빠지는 잘못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비판하는 생각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분노하셨고,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렸습니다. 만약 욥이 그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고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욥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욥은 친구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빕니다.
하나님은 왜 욥에게 이런 행동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만약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욥 자신에게도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행복을 얻도록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용서와 은혜를 받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과의 관계, 가족이나 친구나 교회 식구들이나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도록 지으셨습니다.

10절입니다. “욥이 주님께, 자기 친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욥의 재산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욥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보다 배나 더 돌려주셨다.”

우리는 복을 받기를 바라지만 축복 전에 더 중요한 이 사건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욥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이제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도리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위로한답시고 나를 찾아와서는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픈 말들을 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고, 순종하여 기도하자 욥은 율법의 차원을 뛰어넘게 됩니다.
내가 옳다, 네가 잘못이다 이런 잘잘못을 더 이상 따지지 않게 된 것이지요.

◈ 고난이라는 영적인 시험에 드디어 욥이 합격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이 이미 찾아왔거나 혹은 장차 고난이 닥쳤을 때, 고난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터득하셨습니까?
승리자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고난에 무릎을 꿇는 실패자가 되시겠습니까?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이보다 귀한 점은 욥의 인격이 달라진 것입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고난이 닥칠 수 있는데, 이러한 억울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가슴에 칼을 꽂았던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 예수님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따라서 나의 잘못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라,
내 잘못을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신 분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법정에서 변호하실 수 있었지만,
주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는 침묵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억울하게 매를 맞으시고, 죄인 취급 받으시고, 침뱉음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따지지 않으셨고, 하나님께 이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23:34)

우리도 욥처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때 죽어도, 어떻게 죽어도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 그 은총에 오늘도 감사하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우리는 납득이 가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고난을 통해 나를 단련하시면 우리는 정금같이 순수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훈련받고, 성경공부를 통해 깨달을 것입니다.
낮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도 별들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은 욥에게서 인내심을 배우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기 도 ]


하나님,
믿음을 가진 줄 알았지만, 고난을 만나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저희들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상으로 기울어지는 저희들을 붙잡아 주소서.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이해하게 하여 주소서. 용서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회개할 줄 아는 사람, 고난을 겪으면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