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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Grace upon the hu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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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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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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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9월 16일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

( 약 4 : 6 ~ 10 )



인간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고, 문제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고민과 문제가 발생했을까 살펴보면,
교만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창조와 타락을 기록한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던 존귀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교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교만함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인간성까지 변질된 것이지요.

사람이 복을 받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어떤 사람이 항상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은혜를 받는 사람은 언제나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불평을 합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한 순간에 인생이 엎질러지고 맙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 고통과 피 때문에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질병에 걸리거나 손해보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허락하신 일이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은 <나 자신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 저를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만약 겸손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면 어떠한 역경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실패도 감내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스스로를 높게 여겨 불순종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이 스스로를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그 무렵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삼상15:17) 그러나 사울이 교만해지자
하나님은 그의 왕관을 벗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소년 다윗을 장차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다윗의 중심이 어떠했길래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일까요? 겸손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기도를 드려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생활을 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부부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양육할 때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가르쳐야 자녀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늘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기도하면서
교만한 마음이 끼어들면 내 뜻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1. 내가 어디 있는지, 스스로의 ( 좌표 Location )를 알게 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

교만이란 스스로 우월감을 품고, 언제나 자기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합니다.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은 스스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고, 교만은 최대의 악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잠1:7)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다.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꾸미는 마음과 악한 일을 저지르려고 치닫는 발과
거짓으로 증거하는 사람과 친구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이다.”(잠6:16~19)

▷ 교만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그 결과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말씀을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잠16:18~20)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패망한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교만의 치료책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롬12:3)

사람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출생과 삶, 죽음까지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10:29~31)

배가 바다 위를 바람에 밀려 떠다니는 것 같지만,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위도와 경도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것을 숫자로 표시합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십니까?
스마트폰에 보면 위치 서비스가 있습니다. 그 버튼을 누르면 지금 내가 지구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만약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를 대비하여 이 기능을 설정해 놓으면, 금방 셀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자동차들은 안전을 위하여 위치 서비스 추적장치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가 사고로
전복되어 운전자가 의식을 잃었다 하더라도, 자동차에서 내보내는 송신 전파 때문에 911에 자동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구급차가 그 신호 때문에 금방 위치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나의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도움도,
친구들의 도움도,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런 생각이 교만입니다.

◈ 교만 중에서 가장 큰 교만은 스스로가 죄인임을 부정하는 교만입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야~. 내가 뭘 잘못했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고, 친구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 내가 죄수가 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내 죄를 모릅니다. 부인합니다.
변명합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억울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도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아는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하심을 알게 되면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혼나거나 매를 맞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겸손한 사람은 선생님께서 매를 때려도 그 고통을 수용합니다. 참습니다. 선생님이 옳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매를 맞는 친구들 중에서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선생님, 왜 때리세요? 쟤는 안 때리고 왜 나만 때리십니까?” 체벌한다는 것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체벌은 좋은 교육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겸손하면 고통조차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렇게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회개할 기회를 더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남들보다 먼저 순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기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2. 과거의 잘못을 손 씻고, 인생을 ( 새 출발 )하게 해주신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약4:8)

인생을 축구처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눌 수 있다면, 후반전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전반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죄를 짓고, 후회가 많은 삶을 살았다면, 남은 후반전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선한 일을 하면서 아름답게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인생 초기에는 성공을 갈망하고, 돈을 추구하며, 온갖 정욕을 가까이 하며 살았다면,
이제 후반전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욕망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면서 살아야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후반전에서도 여전히 돈을 최고로 삼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마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토록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겸손해지는 마음을 방해하고 자랑하고픈 마음을 심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학문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을 품으셔야 합니다.

(사례) 아인슈타인 박사는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크게 성공한 다음에도 겸손했습니다.
대자연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은 참으로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과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실험기구에 있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툭 떨어뜨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학문은 바다에 비유한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롬12:16)

여러분은 자신이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미모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젊고 건강하십니까? 자신의 건강, 자신의 젊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남들보다 비교적 많은 재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옆에 권세가 있는 친구를 두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키가 크고 용모가 아름답다면 이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장과 용모는 작은 병에도
크게 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이나 지성으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거저 받아 누리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마운 분들입니다.
모든 자연이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꽃 한송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예술작품입니다.
풀 한 포기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은혜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감사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이 강직하여 자신의 신앙과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이단에 속한 죄인으로 여기고 그를 처형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의 죽음에 대하여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줄로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부활하셔서
자신을 불러주신 사건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1:15)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바울은 인생을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엎고, 예수님을 모시고 새 출발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옆에 모시고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주님께 물어가며 일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사는 목적이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는 이유가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내 동족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이 죽어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주님의 그 사랑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오늘 당장 죽어도 행복하다고 여겼습니다.
☞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 때문에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인식할 때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영원히 살아계시며,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비록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나,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함께 있다.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회개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여 준다.”(이사야 57:15)

우리가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고요한 평안을 주십니다.
싸우는 집안은 평화가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마11:29)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경쟁심과 허영 때문에 일어납니다. 치료제가 있을까요?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 2:3) 겸손한 마음을 품으면 다툼이 줄고, 허영심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투지 않으려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와도 겸손한 사람은 맞대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들도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겸손은 무조건 자기 자신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정직하게 자기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겸손한 사람이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섭섭해 하지 않게 됩니다. 섭섭하다는 것은 바라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지면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화가 나더라도 잘 참습니다.
겉으로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우리의 분노 속에는 숨겨진 교만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 혹시 분열이 있습니까?
교만이 은밀히 숨어있을 것입니다. ☞ 겸손한 사람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인터넷에서 배순덕씨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 "연말 결산을 하는데 1백만원이 펑크난 거예요. 돈을 메꿔 넣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은행에 면목이 없어
견딜 수가 있어야죠." 서울 외환은행 방배동 지점에서 근무하는 배순덕(36)씨. 6년 전의 일이었다.
괴로운 마음에 성당을 찾았다. "하느님! 이 돈만 찾게 해주신다면 앞으로 한 달 동안 성당 변소 청소를
하겠습니다. 제발 찾게 해주십시오!" 기도 덕분이었는지 며칠 후 1백만원은 후배의 계산 착오였음이 밝혀졌다.
그 때부터 배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성당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한 달만 하겠다던 약속이 벌써 6년째다.
"낮 12시 미사가 끝나면 대걸레와 왁스를 들고 화장실을 찾는 것이 일요일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휴지통을 치우고 왁스로 깨끗이 바닥을 닦아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지요."

배씨의 특별한 행복의 순간이다.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 등에 들춰 업었던 첫딸 다영이도 이젠 자기가
대걸레를 밀겠다고 소리지르며 달겨드는 여섯 살짜리 꼬마로 자랐다. 처음엔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일요일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냐며 조용히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배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은행 나가랴, 집안 살림하랴, 딸 둘 키우랴. 바쁘게 살다보면 문득
저만을 위해 허겁지겁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 때가 많지요. 사소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한다는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는 배씨에게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세상살기의 철학을 깨우쳐준다.』



[ 기 도 ]


하나님,
왜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고민들과 문제들이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 자신이 겸손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풍성한 은혜를 받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했던 이유가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제 자리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과 함께 새 출발하게 해주심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겸손한 사람이 되어 동행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