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주일 설교 말씀

Home   |   설교 말씀   |   주일 설교 말씀

나 자신을 아는 은혜(Grace of self-knowledge)

Author
admin1
Date
2018-09-09 13:40
Views
168
(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9월 9일

나 자신을 아는 은혜。

( 롬 8 : 28 ~ 37 )



사람이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처럼
소중한 지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바르게 안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우리는 정작 나 자신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특히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짧은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더욱 모릅니다.

우리는 정보화 사회, 지식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 건강 정보, 전문 지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특히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어느 칼럼리스트가 세계적인 석학에게
질문했습니다. “현대인에게 특징지을 수 있는 성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석학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현대인은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며, 세상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앞으로 점점 더 무식해질 것입니다.”

느낌이나 감정으로 자신을 알 수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키와 외모, 체력 등을 알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를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영적인 자아(a Spiritual Self)입니다. 영혼이 건강하고 건전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나 자신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먼저,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말고 솔직해야 합니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것도 큰 유익이 됩니다. 두번째 타인을 통해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구들이 말해주고, 선생님이 가르쳐주고, 의사가 알려주는 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학벌이나 재력, 성공 등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나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나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완전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했고,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했습니다.

♡ 우리가 평생을 연구해도 알 수 없는 진실은, ‘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인데, 나처럼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을 왜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왜 나의 죄를 잘 아시면서도, 내가 받아야 할 벌을
예수님이 대신 처벌받도록 했는지, 우리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아는 것처럼 소중한 은혜가 없습니다. 이 은혜는 현실의 나를(Reality)
깨달음(Realize)을 통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오늘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도 그 의미를 모릅니다. 내 삶과 죽음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주님을 힘입어서, 비로소 나를 알 수 있습니다.



1. 나는 사랑받지 못할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 용서 )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롬8:29~30)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착해서도 아닙니다. 봉사했거나 노력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선택하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의 선택이요 결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설명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죄인인데,
그 죄인들 가운데서 나를 하나님은 불쌍하게 보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은총은 입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내가 장관을 했든, 대통령을 했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우리는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니까요. 그러나 굳이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자비심이 많은 분이셔서 보다 연약한 자를 선택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한 자는 스스로의 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는 자신의 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둘러보시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 겸손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까? 아니면 나보다 연약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부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의 연약함을 노출하게 됩니다. 무기를 내려놓습니다. 서로의 약함을 드러낼 때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능력이 많은 분이셔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강한 사람은
스스로 독립하려고 합니다. 의지가 강한 것은 좋은 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의지를 굳세게
하려는 것과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을 양육하는 것은 강한 남성이 아니라 약한 여성입니다. 남자들은 성공을 갈망합니다.
여성들은 사랑이 있는 행복한 삶을 갈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랑의 열매, 감사의 열매, 기쁨의 열매를 맺는 제자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가지에 많은 열매들이
달리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성공적인 삶과 열매 맺는 삶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성공적인 삶과 열매가 풍성한 삶 사이에는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성공은 힘과 통제력과 존경할 만한
태도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그것이 발전되어 가도록 계속 통제력을 가지며,
그것을 양적으로 풍부하게 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에는 많은 보상과 때로는 명성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열매는 약함과 취약성으로부터 맺습니다. 그리고 모든 열매는 독특합니다. 어린 아기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 속에서 잉태된 열매이고, 공동체는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가운데 태어난 열매이며, 친밀함은 서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짐을 통하여 자란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은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임을 서로 서로에게 상기시켜 주십시오.”(헨리 나우웬, 영혼의 양식. 두란노. P.21)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강한 면을 통해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 나의 약함,
나의 고통, 나의 눈물, 나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옵니다.
사도 바울을 괴롭힌 것은 육체의 질병이었습니다. 가시처럼 늘 자신을 찔렀습니다. 이 가시를 뽑아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약할 때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 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9-10)

삭개오는 키가 작다는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그 열등감은 돈을 모으는 데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은 그를 더욱 완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그가 사는 여리고 성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을 보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은 그의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었고,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는 진정 자신이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환자를 만나면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환자들은 모두가
감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은 병이 들면
내가 죄가 많아서 병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용서를 들은 환자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사했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하신 죄를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롬8:1)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랑으로 나를 용서해주신 것을 감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괴롭힙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해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2. 우리가 어떠한 역경이라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의 ( 사랑 ) 때문이다.



“자기 아들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롬8:32)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주신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 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위대한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나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나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나를 교육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를 성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을 모두 주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무엇인가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 주시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받으면 안 될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은 지금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만한 때가 되면 하나님은 주십니다.

가장 큰 선물, 가장 큰 사랑,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입니다.
작은 것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까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나의 자격을 따집니다. 나는 똑똑하지 않으니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예쁘지 않으니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합니다. 나는 능력이 부족하니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의를 행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또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치 보며 신앙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종업원이 주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
주인의 아들과 딸은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조금 실수했다고 도망가려고 하고, 조금 선한 일 했다고 자랑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변덕스런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인자하신 분입니다. 이해심이 많으시고 너그러운 분입니다.
한결같은 분입니다.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이래도 우리를 사랑, 저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나를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잘못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나를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도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남의 흉을 보고,
뒷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흉보고 다닐 것만 같이 느낍니다. 그런 불안감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영적인 병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거나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합니다.

☞ 이런 불안감이 느껴지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롬8:33-34)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능히 내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아멘>이라고 대답하셨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용서해야 합니다.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셨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인정해주시고 베풀어주신 의를
나의 의로움으로 수용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행복이란 하나님의 선포를
수용할 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마음에 살아 계십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그 주님이 지금 내 마음에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나를 죽게 했고,
다시 나를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과 나는 이제 한 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롬8:10-11)

이제 우리는 어떤 고난이나 역경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내 감정에 의존해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예수를 부활시키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만드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날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계신다면,
그 누가 나를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또 다시 의심하고
믿음을 버리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롬8:35)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왔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런 사랑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나를 좋아할 것입니다.
내가 연약해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시험을 이길 능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움을 이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시겠습니까?




[ 기 도 ]

하나님,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스데반 집사님처럼 돌에 맞아 죽는 순간이 오더라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하는 일이 안 되고, 몸이 아프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내가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자녀로 선택해주시고, 사랑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이 행복한 사랑으로
우리들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여 주소서.
성적이 오르거나, 장사가 잘 되거나, 자녀가 출세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