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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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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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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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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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9월 2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 마 7 : 12 )

♡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나도 태도를 취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나도
상대방을 친절하게 대하고, 남이 나를 칭찬하면 나도 그 사람을 칭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 내 마음을 잘 살펴서 그것을 상대방에게 적용하여, 내가 바라는 것처럼
상대방을 대하라는 뜻입니다. 쉬운 얘기지만, 실천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말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귀중히 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아랑곳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솔선해서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적극적인 태도로 인간관계를 풀어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상대방의 태도를 보고 맞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상대방이 존귀한 신분에 있든지,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에 있든지, 주님은 각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존귀하게 대하셨습니다. 귀신들려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여인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져서 곱추로 살아가는 불행한 여인에게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시며, 존귀하게 대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주님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상대방이 내 생일을 챙겨주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선물을 바라는 마음이 나에게 있다면, 내가 상대방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선물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받기보다 줌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요.

◈ 한국 축구 손흥민선수는 경기에서 진 후 운동장에서 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심정을 잘 아는지,
자신이 이긴 날 상대방 선수들이 운동장에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일으켜 주고, 포옹해주면서 격려해주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했지만 자신의 기쁜 감정을
억제하고, 패배한 상대방 선수를 배려하여 손을 잡아주는 선수를 우리는 종종 보곤 합니다.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의 작품 중에 [어거스터스 Augustus]가 있습니다.
어거스터스가 출생했을 때 한 이상한 노인이 산모를 찾아와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으로 이 아이를
위한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 주겠소.”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이 아이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합니다. 어거스터스는 그 희망대로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에 취하여 교만해지고 남을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그의 말년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늙은 어거스터스에게 이상한 노인이 다시 방문하여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 한 번 더 소원을 들어주겠소.”하고 말합니다. 어거스터스는 서슴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간이 아니라 누구나 사랑해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이 단편이 말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행복이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 지금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1. ( 이해 )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관계의 기초입니다. 상대방이 내 사정을 이해해주고, 내 처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사정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이해심이 부족하고 화부터 내는 사람은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사례) 어떤 어머니가 아들의 방을 청소하다가 아들의 노트북 컴퓨터를 열어보았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컴퓨터에서 여자의 나체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큰 일 났구나! 내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이런데 정신이 팔리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몰랐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를 나가서 기도한 후 목사님께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아들의 컴퓨터를 몰래 훔쳐본 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오면 이렇게 말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사과할 일이 있단다. 오늘 엄마가 네 방을 청소하다가 너의 컴퓨터를 켜보게 되었단다.
호기심에 켰지만 너의 사생활을 몰래 엿본 것은 엄마가 미안하구나. 그리고 여자의 사진들이 있는 것을 보고
엄마는 많이 놀랐단다. 네가 벌써 이렇게 큰 줄은 몰랐구나. 난 니가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벌써 남자가
되어가는구나. 그러니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할아버지는 손이 귀하여 12살 때부터 부모님이
그 마을에서 신붓감을 찾았다고 들었다. 여자를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네 마음을 엄마도 이해한다.”

저녁 식사 후에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얘기를 다 들은 아들이 엄마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더랍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여자에게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지금 저에게 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앞으로 엄마에게 솔직히 말할께요.” 그리고 얼마 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 옆에 앉았는데,
몸이 화끈거리고 기분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주더랍니다.
아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엄마에게 나눈 것입니다. 왜일까요?

엄마가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엄마가 아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판단부터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요놈의 새끼가, 벌써부터 여자를 밝혀? 지 애비 닮아가지고 바람기가
다분하네~. 이렇게 야한 거나 보고 있으니, 싹수가 노랗다. 공부는 이제 다 했다. 집안은 망했구나.’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아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엄마와는 대화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친구들에게만 털어 놓았을지 모릅니다.

※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진 장점과 단점들을 모두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 각 자의 개성을 존중하셨고, 장점을 살리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단점이 있습니다. 나의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나의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쓰라린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런 단점까지도 덮어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민 와서 외로움을 느끼다가 반가운 친구를 사귀면 나의 허물과 상처까지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관계가 악화되고 나빠지면 상대방의 약점까지 들추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가 생긴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다니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것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에게 밥을 사주고, 돈을 써가면서 베풀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셔서, 십자가의 사형수로 우리 죄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사랑을 한 순간도, 단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이해해 주셨기에 그 은혜로 살았습니다.



2. 참고 ( 기다려 )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분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하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히6:13~15)

우리는 나에 대하여 주위 사람들이 참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다려주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실수했지만 다음 번에는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때까지 사람들이 참고 기다려주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다음 기회에 1년 후에 온다고 합시다. 본인에게는 이 1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겠습니까? 이 때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처럼 고마운 사람은 없습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가장 고마운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참지 못하고 성급한 사람은 지금 당장
평가하려고 합니다. “틀렸어~. 끝났다니까? 망했다, 망했어!”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친구에게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실망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는 녀석이 나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베드로야, 너 정말 실망이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믿고 기다리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탕친 새벽에 주님은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그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와의 우정을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진 돈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받을 수 있는 상속을 미리 당겨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돈이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하지 않고, 허랑방탕한 탕자에게 그 돈은
오래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금방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립니다.
눈이 쑥 들어갈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칩니다. 오래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도 그럴 줄 알았다느니, 돈은 얼마라도 남겨 왔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 자녀 교육의 비결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속으로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돌아옵니다.
가정이 건강하려면 서로가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만족 못한다고 짜증내고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가정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 자기가 원하는 환경, 자기가 만족한 삶이 되지 못한다고 남편이나 아내가 자식을 원망하며
참아주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하면 가정은 위기에 몰립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 가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참아주면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참지 못해, 기다리지 못해, 가정에 상처를 주었다면 그 가정은 병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의 공부 문제, 남편의 직장 문제, 기타 사소한 문제들로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 내가 온유한 마음을 품고 살 때 우리 가정도 화목해집니다.

가정의 행복은 나의 결심으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따뜻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 친절한 손길. 여기에 기쁨이, 즐거움이, 행복이 깃듭니다.
피곤한 남편에게, 지친 아내에게 내 만족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가정이 건강합니다.



3.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 존중 )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롬5:8)

우리는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하곤 합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일은 그래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실망하면 용납하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그 사람에게 우리는 충성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회에서 별 쓸모 없다고 취급받는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문둥병자가 그랬습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그랬습니다. 병들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은 불필요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사회에서는 쓸모없다고 취급받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각 사람을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주님은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의 연봉을 벌 수 있느냐?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느냐? 그런 기준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은 그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한
자녀라고 본 것입니다. 삭개오가 그렇게 인격적인 사랑을 받고, 회개합니다. 창녀라고 막 대하고
귀신들렸다고 미친 여자 취급을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헌신했습니다.
더러운 여자가 도리어 가장 귀한 경건한 헌신을 한 것이지요. 인정받는 일처럼 고마운 일이 없습니다.

간증) 중학교 1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학기 초라 학급에서 반장과 부반장을 뽑아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반 70명에게 물으셨습니다. 반장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저는 초등학교 때
단 한 번도 반장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반장을 하고 싶은
이유를 말했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힘들겠지만, 친구들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그런데 투표에서 떨어졌습니다. 제 짝이 반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지만, 중간고사가 끝나면
성적 처리를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70여 명의 성적을 옮겨 적고, 합산하여 석차까지 매기는 일이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 일을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1년 내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마도 학급 친구들이 저에 대하여 선생님께 말한 것 같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열고 늘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주일이 되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나간다고. 선생님은 크리스천이 아니셨지만,
그런 저를 믿어주시고, 맡기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믿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해주시는 신실하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예배 시간도 잘 지켜야 합니다. 예배 시간 15분 전에 와서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행복은 남들보다 재산을 많이 보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신실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만큼 선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사랑하시고,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인정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을 남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 기 도 ]


하나님,
주님을 닮고 싶은데, 아직도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쳐 주셔도 잠깐 고개를 끄덕일 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기적이고, 남을 속이고, 미워하는 나의 악한 본성이 쉽게 바뀌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공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끌려 다닐 때가 많습니다.
보이는 것에 연연하며 살았고,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쭐거리며 뽐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풀이 죽어 주저앉곤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께 받는 따뜻한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인정해주는 넉넉한 마음을 품게 하소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고 기다려줄 줄 아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