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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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여라, 주실 것이다(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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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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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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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8월 26일

구하여라, 주실 것이다.

( 마 7 : 7 ~ 12 )



♡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11:22~24)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이 약속을 순수하게 믿고 그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얼굴이 얼마나 밝겠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니, 그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안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때문에 감격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늘 감사하고, 겸손하게 일하며, 성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일(또는 공부)은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면서 기도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오늘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심성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설마~.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의 기도를 그토록 신중하게 들어주실까?’ 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사랑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것일까요?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진심을 담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거나, 혹은 바르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했다가
응답받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4:2-3)

그런 말을 하면서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가 뭘 구할지 잘 모르면서 기도한다 하더라도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약1:5)

부부관계의 질은 나누는 대화가 결정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가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의 자세가 바른 사람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야 들어주시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말을 잘 하거나 설득해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금식하면서 협박성(?) 기도도 좋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목청 높여 기도했지요.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눅18장).

▶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이 원리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1. 낙심하지 않고 ( 끈질지게 )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마7:7-8)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받는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그 원리를 알아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사람에게 먼저 주십니다. 한 두 번 기도하고 나서 포기하는 사람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눈여겨 보십니다. 반복된 행동 속에서 그 사람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운동할 때 무거운 것을 한 두 번 들어올리고 끝내십니까? 아니면 10회에서 12회, 그렇게 한 세트를
한 다음에 또 한 세트를 더 하십니까?

중요한 일일수록 끈질지게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가 구원을 결정하고, 영생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그를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어려움에서 그를 돕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존 비비어(John Bevere)는 <끈질김>이라는 그의 책에서 끈질긴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끈질김은 단호하고 집요하고 굴복하지 않는 자세나 태도를 묘사한다.
간단히 말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끈질긴 마음은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원하는 목표를 끝까지 완수하는 자세다. 아무것도 끈질긴 사람을 단념시키지 못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끈질긴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부탁합니다. 끈질긴 사람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내 마음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낙심하면 안 됩니다. 어려움이 생겼다고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고통이라는 그 끔찍한 형벌도 참으셨습니다.
고통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끈질긴 근성은 계발되는 것입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종아리 근육이 늘어나듯, 끈질긴 인내심도 늘어납니다.

“끈질긴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순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말이다. 모든 면에서 잘 끝마치려고 노력하는 끈질긴 그리스도인은
가장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당신에게도 끈질김의 미덕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끈질김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계발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망치로 벽돌을 부순 적이 있습니까?
수 십 차례 망치를 내리쳤지만 갈라지지 않던 벽돌이 어느 한 번의 망치에 쩍 갈라집니다.
물을 끓일 때 99도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물이 100도가 되면 김이 올라가면서 갑자기 펄펄 끓기
시작합니다.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반복을 통해서 이렇게 변화되는 놀라운 순간을
영어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더 간절해지고, 더 많이 반복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봄이 오면 어느 한 날에 꽃들이 만발합니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활짝 핍니다.

(사례)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앓던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센병을 앓았습니다.
온 나라를 뒤져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외국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사는데,
그 선지자에게 가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귀한 선물을 마차 가득 싣고 가서 그에게 부탁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대문에 나와보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 대답합니다. 요단 강을 찾아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나아만 장군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입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이러한 응답에 화가 납니다.
교만한 마음이 든 것이지요. 그리고 요단 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씻으라는 그 말에 의심이
생깁니다. 나아만은 자기 나라에도 맑고 좋은 강이 많은데 하필이면 요단 강에 자신의 몸을 담가야 할까?
의혹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함께 동행했던 종들이 나아만에게 권면합니다. 엘리사의 말을 들으라고.
믿고 순종하라고.

교만한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에는 복을 주셔도 그 사람이 고마운 줄 모릅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두 갈래로 찢겨진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갈라지면 힘을 잃습니다.
틈이 생긴 마음에는 아무리 은혜의 물을 부어도 고이지 않습니다. 새어 나갑니다. 나아만 장군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이렇게 끝까지 순종합니다. 그러자 한센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썩었던 그의 살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잃었던 통증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가? 무엇이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가?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은 복을 놓치는가? 똑같이 노력했어도 그 결과는 왜 전혀 다를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9)

지금 여러분 가방이나 핸드백에는 어떤 열쇠가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엇입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무엇일까요?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16:19)
요한 계시록에서도 주님은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살아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계1:17-18)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천국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천국 열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는 가난하고 외로우셨지만, 온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2. 기도는 삶의 의미를 알게 한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 지혜 )를 주신다.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마7:11)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전능하신 여호와여, 이렇게 부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부릅니까? 제 딸은 저를 어떻게 부를까요?
이 땅에 계신 나의 아버지~. 이렇게 부를까요? 아닙니다. 그냥 아빠라고 부릅니다.
간혹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드리는 분 중에서 긴장하여 하나님을 마치 대왕에게 편지하듯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어색하시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산에 가서 기도를 하면, 주위 분들 중에서 나무를 붙잡고 하나님께
“주시옵소서~” 하면서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렇게 기도하는 것이 믿음
좋은 기도인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자녀가 와서 무엇을 달라고 부탁할 때, 생긋 생긋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면서 부탁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바락 바락 소리 지르면서 부탁하는 것이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6:7)

우리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할 때는 그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신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격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거나 격식을 차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손녀와 문자를 주고 받을 때
글씨 받침이 틀리면 어떻습니까? 철자가 틀려도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입니다.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이해심이 많은 분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 드릴 때 격식을 몰라도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가장 사랑을 많은 받았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 없으시다.
두고 두고 꾸짖지 않으시며,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신다.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시다.
동이 서에서부터 먼 것처럼, 우리의 반역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며,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
(시편103: 8~13)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스마트 폰을 만든 사람은 그 안에 다양한 기능들을 만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은 그 안에 어떤 기능들이 있고, 어떻게 하면 망가지는지
알고 있습니다. 망가진 기계를 고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분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똑같지 않습니다. 각 자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고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가는 목적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강아지 집을 만들더라도, 그 용도를 생각하며 제작합니다.
개의 크기와 성격을 고려하며 이 개가 살 집을 설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으시고, 가장 존귀한 작품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작은 미풍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코스모스가 피어난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너무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탄사를 보냅니다.
자기를 아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인생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깨달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
표현도 다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에게는 삶의 본질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그래서 고통과 죽음이 찾아왔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생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인간은 의롭게 된다는 것을 삶의 본질로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삶의 본질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에 두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망가지더라도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소망이었고,
부활하게 될 미래였으며, 영원한 기쁨이었습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외로움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사도 요한에게는 삶의 본질이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요한은 죄 사함 받았습니다. 순교한다 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은 자신이 누구인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 받았던 사랑은 행복이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살아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주님께 받고 있는 이 사랑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해주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야고보에게는 삶의 본질이 <지혜>였습니다. 지혜는 공부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그 방향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약1:5)

▶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 무엇을 구하고 싶습니까?

믿음입니까? 소망입니까? 사랑입니까? 지혜입니까?
간구하는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 기 도 ]


하나님,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걱정만 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께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게 하여 주소서.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감사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직장에 출근하거나 학교에 등교하면, 감사 기도를 먼저 드리게 하여 주소서.
사람을 만날 때도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잘못된 동기로 기도할 때에도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지게 기도하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시간이, 가장 즐겁고 의미있게 만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