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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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치유자(The Healer of Our Lonel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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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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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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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8월 5일

외로움의 치유자。

( 출 3: 11 ~ 17 )



사막같은 거칠고 황량한 삶을 살아가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한 때는 그도 높은 이상과 고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의 출생과 성장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그는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룰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그의 인생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로 꼬였습니다.
자신이 가슴 속으로 사랑했던 같은 동족을 위해 했던 일이 의로운 정의가 아니라 쓸데없는 참견이 되고 말았습니다.
의로운 분노라고 여겼던 일이 그 동족의 눈에는 부질없는 살인죄로 비춰진 것입니다.

두려움과 후회를 안고 그는 아주 멀리 떠났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외국으로, 아무로 나를 기억하지
않는 사막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기를 바랐는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룰 것만 같았던 자신의 인생은 이제 아무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가슴 깊이 사랑했던 동족을 위해서 아름답게 타오를 줄 알았던 자신의 삶은 그냥 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죽었고, 열정도 식었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늙어빠진 몸과 열등감뿐
이었습니다. 살인범이라는 정체성, 한 번도 꽃을 피어보지 못한 채 좌절된 꿈, 세월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을 걷고 있는 자신은 가시로 뒤덮인 선인장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힘들고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민자로서의 삶도 그렇지만,
나아지지 않는 건강,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 삭막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우리 가슴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가 넘치면 좋겠지만, 상처 자국들과 가시 돋힌 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통함을 풀지 못합니다.
사소한 일상들에 대하여 일일이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도록 해주기
위해서 자신의 몸 전부를 십자가에서 제물로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완고한 마음으로 서로를 비방하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 내가 왜 이럴까?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사랑하면 좋을 텐데 왜 미워할까?
저 사람이 내가 고졸이라서 무시하나? 나는 너무 가난해서 결혼도 못하겠네~.
벗겨진 이마를 가발로 가린 사실을 저 사람이 아는 걸까? 내가 못 생겼다고 저 사람도 나를 무시하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거밖에 안 돼.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한 나의 과거를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본문에 나오는 모세. 그 사람 못지 않게 우리에게도 퍽퍽한 현실이 있습니다.
지독하다고 느껴지는 고독감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우울증이 있습니다.
현실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있습니다.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영적인 무기력감도 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습니다. 시한폭탄 같이 자신이 언제 터질지 몰라서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나면 그동안 나를 알던 주위 사람들은 더욱 충격과 슬픔을 겪을 것입니다.

☞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막처럼 황량한 이 곳으로 보내셨을까요?
내가 뽑을 수 없는 가시들을 어떻게 하면 뽑을 수 있을까요?
세월이 가도 치유되지 않는 열등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숨기고 싶은 나의 무력감과 과소평가, ( 열등감 )을 하나님께서는 드러내신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오래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열등감입니다.
나를 찾는 사람도, 나를 필요로 하는 단체도 이제는 없다는 병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내 말을 믿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만 같고, 아무도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 아닌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그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쓸모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라도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쓸모 없다고 버려진 인생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건강을 잃었다고 해서 쓸모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실직했다고 해서 무가치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에서 상처받고, 연약한 자를 더 찾으십니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그렇게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모세 자신은 스스로를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를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계획이 실현되려면 먼저 모세 안에 있는 열등감을
치료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모세의 열등감을 치료하실까요?

수술을 하려면 수술할 부위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드러내야 하듯이, 하나님도 모세의 내면에 숨겨진 열등감을
밖으로 끄집어 내셨습니다. 먼저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의 속마음을 드려내셨습니다.
사람의 배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먼저 여러 장비를 통해서 검사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서 그 암이 얼마나 크고,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고 나면, 이제 구체적으로 수술하기 시작합니다.

◈ 모세의 열등감 수술은 네 단계를 거쳐서 진행되었습니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상실감을 드러내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출3:11)

사람은 속이 꽉 차 있을 때가 있고, 텅 비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모세의 마음은 텅 비어 있습니다.
40년 전, 모세의 나이 40세 때는 모세가 자기 확신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자기가 누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또한 이집트 공주의 보호를 법적으로 받고 있으며, 당대 최고의 학문과 문화를 익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뜨거웠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충성심도 불탔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신념으로 꽉 찼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름없이 보내는 40년 세월 동안 모세는 자기 자신을 상실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몰랐습니다. 살아가는 목적도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심으로 그는 위대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거룩한 자녀가 된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정신적인 병을 드러내셨습니다.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의처증, 의부증도 큰 질병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하겠습니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불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하면 어찌합니까?”(출4:1)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았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가 힘이 듭니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수용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했던 사람은 아무도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거절감은 자기 불신으로 깊어집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호의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또 다시 피해를 당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눈동자가 흔들리곤 합니다.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곤 합니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자신을 숨기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를 불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까지도 불신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믿어 주셨습니다. 그의 반복된 거절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가 결국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믿음이 더 강했습니다.
내가 나에게 대하여 아는 지식보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생각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 의식 깊숙한 곳의 두려움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지하실 밑에서 울고 있는 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은 밝은 곳으로 나오십니다.

세번째 단계는, 무기력감의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모세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출4:10)

▷ 우리에게도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지 않을까요?

분노의 감정도 그렇습니다. 별 일 아닌 일에도 쉽게 화를 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분노를 건설적인 방법으로 다스릴 줄을 모릅니다. 분노는 우리의 감정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는데, 왜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지 그 원인을 본인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불안의 감정도 우리를 부정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릴까 늘 불안한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 문제로 불안에 떠는 분들도 많습니다.
인간 관계의 불화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문제, 자녀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불안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안정감을 가지고 대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는 근거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살후3:1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4:6-7)

여러분 가운데 혹시 무기력감에 빠졌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하나님께 그 감정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네번째 단계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해도 문제가 되고, 과소평가해도 문제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장 건강한 태도입니다. 모세의 문제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치 없는 존재이니, 보낼 만한 사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머뭇거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씀드리니.”(출4:13)

지나친 열등의식은 우리를 오히려 교만하게 만듭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물 속에 젓가락을 넣으면 굽어진 모습으로 보이듯이, 우리 마음에 열등감이 들어오면,
나 자신을 굽어지게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안에 있던 이런 문제 감정들을 밖으로 드러내신 까닭은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의 열등감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고치실까요?




2. 하나님에 대한 바른 ( 이해 )가 나의 부정적인 자아상을 치유한다.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출3:12)

모세가 부정적인 생각에 젖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졌던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면서 40년 동안 늘 비교당했던 대상은 <바로 왕>이었습니다.
바로 왕의 말은 곧 이집트의 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질서였습니다. 바로 왕은 이집트의 신이었고,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이런 대상에게 가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늘 비교 당하면서 열등감을 느꼈던
그 대상에게 지금 당당하게 맞서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성장하면서 또 한 사람 비교당했던 대상은 모세의 형, 아론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말을 잘 했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첫째 아이가 말을 먼저 배웠기 때문에 말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동생 입장에서는 늘 형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굳어져서 열등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셀 수 없이 많이 창조하셨지만,
단 한 사람도 똑 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각 자 개성있게 만드셨습니다. 지문이 다 다릅니다.
눈동자가 다 다릅니다. 목소리가 다 다릅니다. 재능과 성격과 아이디어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온 우주에서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기계로 똑 같은 제품을 찍어서 만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10)

하나님과 모세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그 안에 있던 비교의식 대신에 창조의식을 심어주셨습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광야에서 나 혼자서 외롭게 산다고 생각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충격적인 발언을 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겠다고. 이 얼마나 감격적인 약속입니까?

모세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고독감에 시달릴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반드시 지켜질 약속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늘 동행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니까 함께 있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 동. 행. 의. 식.

지금 여러분에게는 이런 의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불쌍합니다. 서글픕니다. 허전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행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 모세의 열등감이 어떻게 치유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자다. 나는 온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창조자다. 나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구원자다.
나는 죽은 자를 살리고, 살아 있는 자를 죽일 수 있는 생명의 주인이다. 나는 인간에게 복을 주는 공급자다.
나는 인간의 상처와 질병을 치료하는 치유자다.
나는 인간을 혼자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인간과 함께 동행하는 임마누엘 하나님이다.

♠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내용들을 믿으십니까? 수용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비뚤어진 신관을 가진 사람은 자아상도 바르게 펴질 수가 없습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유일하게 독특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비교의식에서 해방됩니다.
창조의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감사의식이 싹틉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찾아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평화롭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

마크 배터슨은 <극복>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미지가 왜 중요한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단순히 천성과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자아상이 아닌 하나님상이야말로 우리의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 열쇠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기 도 ]


하나님,
내 안에 있던 그 많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주 혼란스러우며,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렸던
저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늘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확고한 믿음으로 건강하게 살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시듯, 나 자신도 존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