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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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했던 여인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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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07-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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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7월 29일

고독했던 여인의 구원。

( 막 5: 24 ~ 34 )



사랑했던 사람들이 내 곁에서 떠나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몹쓸 병이 생겨서
친구들도 떠나고, 회사도 떠나고, 끝내 가족들마저도 내 곁을 떠난 사람은 슬픈 정도가 아니라 고독합니다.
살아갈 이유도, 삶의 희망도 사라지고 맙니다. 이토록 고독했던 여인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건강마저 잃었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라도 받았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질병이 회중들이 모인 곳에는 갈 수 없는 몹쓸 병이라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영적으로도 위로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들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곁에 있어 줄 친구나 가족이 없는 이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마저 12년 동안 치료비로 다 쓰고, 이제 빈털터리가 된 신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행려객이 되어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고,
날마다 술로 자신의 서글픈 인생을 달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귀한 것을
발견합니다. 이 세상에 소중한 것이 많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돈, 건강, 명예, 가족, 추억,
이것들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건강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돈도 한 때 소요해보는 것이지, 영원히 가질 수는 없습니다.
사망 신고가 접수되면, 소유권 이전 절차가 진행됩니다. 명예는 오래 갈 것 같지만, 이 또한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절망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를 바라보던 삶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삶,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를 맡기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을 영원한 세계로 건너가도록 해주는 다리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을 통해서 이집트의 모든 재물보다 더 값진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고독을 해결해주는 것은 술이 아닙니다. 섹스나 마약이나 카지노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도피하게 만드는 수단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되고,
감정적으로 기쁘며, 의지적으로 용납할 수 있어야 우리는 행복합니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죄를
통해서는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죄는 자유한 자만이 즐길 수 있지만,
죄인이 되면 그 순간부터 자유를 빼앗깁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해주는 교도소가
죄수의 자유 하나만을 빼앗아도 그는 인간다운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자유는 인간다운 삶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마치 죄인처럼 자유를 빼앗기고, 행복도 빼앗긴
고독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녀는 참다운 자유를 회복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잃었던 건강만 되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Identity), 삶의 안정감(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행복감마저
누리게 됩니다.

☞ 이런 행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질문으로 대답해 주십니다.



1. 너는 내가 너의 ( 문제 )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느냐?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막5:28)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닌데, 그런 대상에게 자신의 염원을 담아서 기원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천 년 묵은 고목나무에게 소원을 빌거나, 커다란 동굴 앞에서, 또는 바다를 향해서 간절한 소원을 비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만든 우상 앞에 절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우상들은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니고, 도리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어리석은 미지의 세계로 몰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철저히 금지시키셨습니다.

“이방 나라에서 살아 남은 자들아, 모여 오너라. 다 함께 가까이 오너라. 나무 우상을 들고 다니는 자들과,
구원하지도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다.”(사45:20)

“그것들은 논에 세운 허수아비와 같아서, 말을 하지 못한다.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 늘 누가 메고 다녀야 한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없고, 복도 내릴 수가 없으니, 너희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렘10:5)

평생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던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그 개인은 멸망당합니다. 삶은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민족은 망하고 백성들은 재앙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나옵니다.

“너는 내 앞에서 네 아버지 다윗처럼 살아라. 그리하여 내가 네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네게 준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켜라.”(왕상9:4)
그러면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와 네 자손이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등을 돌리거나, 내가 네게 일러준 내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을 숭배하면, 나는, 내가 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끊어 버릴 것이고, 내 이름을 기리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을 외면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사이에서, 한낱 속담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성전이 한때 아무리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놀랄 것이고
어찌하여 주님께서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 하고 탄식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조상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이끌어 내신 주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그 신들에게 절하며 그 신들을 섬겼으므로, 주님께서 이 온갖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고 말할 것이다.”(왕상 9:6~9)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좋다는 약을 다 써 보고, 훌륭하다는 의사는 모두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지만,
아무 효력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망 속에 빠진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기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예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구나. 병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그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시구나. 예수님은 인간이지만, 수 많은 다른 사람들 중에 한 사람,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존귀하게 모시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님을 따라다녔던 군중들도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과 악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삶에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신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삶의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내가 필요할 때 의지할 분 쯤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을 듣기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져주시는 치료,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자궁에서 피를 흘리는 질병을 앓았습니다. 피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그녀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병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부정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입니다.
만약 공격적인 사람이 자신에게 돌을 던진다 하더라도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소금을 뿌린다
하더라도 대항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몸마저 아프니 더욱 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의사를 만나고 오면 낙심은 절망으로 깊어졌습니다. ‘결국에 고칠 수 없구나~.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 밖에 없는 것인가?’ 그녀는 외로웠고, 슬펐습니다. 마음도 아팠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불치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라니. 꺼졌던 소망의 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
부정한 여인인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그녀는 당당하게 주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눈을 보면서 자신의 질병을 말하기도 쑥스러웠습니다.
환부를 보여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주님의 곁으로 가서 그 분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 이러한 그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르셨을까요?

각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녀의 중심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 그녀의 믿음, 그녀의 슬픔과 불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인류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자신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기를 하나님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던졌던 질문은 “누가 내 옷을 손을 대었느냐?”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 “너는 내가 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느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를 직접 경험할 수도 있고, 구경꾼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예수님께
믿음으로 맡기시겠습니까? 주님을 믿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하시겠습니까?




2.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신앙 ( 고백 )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막5:34)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하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까? 죄로부터 자유합니까? 죽음의 두려움 없이 평안합니까?
하늘의 소망, 부활의 소망으로 기뻐합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불평이나 원망이 없나요?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항상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쉬지 말고 속상해 하지는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범사에 불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례)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 왔습니다.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더운 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셨지만,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 우리가 누리는 모든 혜택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찬송가 429장)

톨스토이가 쓴 글 중에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라는 것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매우 좋은 도자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들을 아끼며 소중히 여겼습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 도자기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을 달라고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졸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선뜻 딸에게
내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또다시 아버지에게 그 도자기를 달라고 강력히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눈물까지 주루 주룩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자 아버지는 딸을 향해,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니 그것을 가지렴."
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동생은 그 도자기를 손에 꼭 움켜쥐었습니다. 오빠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며
또 약을 올려주려고 오빠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빠 방을 향해서 뛰던 여동생은 그만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그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습니다.
여동생은 깨져 조각난 도자기를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지어서 저를 넘어지게 했단 말이예요?"
자신의 잘못, 자신의 실수는 탓하지 않고, 그렇게 좋은 집을 지은 건축자를 탓하고 원망하는 이 여동생을
기억하며, 훗날 톨스토이는 이 글,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라는 글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도 몸이 아프면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약하게 만드셨어?’라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이 12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면서 하나님을 원망만 했다면
오늘 주님으로부터 치유받는 은총을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녀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치유를 기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소외감,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누구인지 아시지만, 공개적으로 찾으셨습니다.
주위를 둘러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나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놀라운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그녀 마음 중심에 있었던 신앙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모든 사람 앞에서 드러났을 때 주님은 선포하셨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딸이라고.
그녀는 이제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고.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병마에 끌려다니는 포로가 아니라
참 자유를 얻었다고.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시며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어떤 신앙 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아시는 나의 상처를 주님께서 치료해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를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눈여겨 보시며, 우리 각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19:26)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응답하겠습니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도 치유받아야 할 상처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차마 창피해서 말 못할 부끄러움과 감추고 싶은 일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셔서 우리 마음의 어두운 상처를 드러나게 하소서.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들도 치유하여 주소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원망, 두려움도 이제 주님을 향한 신앙으로 물리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늘 사랑해주시는 것을 감사 드립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