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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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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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07-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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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7월 22일

성령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

( 엡 4: 25 ~ 32 )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사람과 사건을 만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영원토록 나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해서 이 사실이
변하지 않으며, 대학에 떨어졌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추락하지도 않습니다. 실직자가 되어도,
사고로 장애인이 된다 하더라도, 늙고 병들고 추해진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소속감(Belongingness)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인식입니다.
세상이 전쟁터처럼 살벌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내가 속한 팀의 대장은 예수님이라는 소속감이
분명한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패배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가치감(Worthfulness)입니다. 간혹 열등감이 많으신 분이 교회 안에서 자기를 무시한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영어를 잘 못하고,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퇴출
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필요한 존재라는 대접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을 받는다고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나 안수집사 투표에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는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1:27-28)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신뢰감(Confidence)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았고,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런 신뢰감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여 쓰임받을 때에 비로소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삶이 힘들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나를 부르신 주님께서 나에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엡4:30)라고 말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누구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장차 미래에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가를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에 성령님을 모시고 가지 않으면 분명 이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오늘 내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성령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녀라도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가 있고, 걱정하게 만드는 자녀가 있습니다.



1. 서로 친절히 대하고, 불쌍히 여기라. ( 용서 )하지 않는 사람은 근심거리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엡4:32)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용서를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처나 피해를 본 사람은 용서해 줄 마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복수하기는 쉬워도 용서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내 능력으로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모두 용서해주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이러한 사랑과 용서의 삶을 통해 늘
천국 같은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인간 본성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14:16-17)

예수님은 또 다른 인격체,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실
텐데,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곧 예수님
자신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매사에 성령님과 의견을 나눕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이것이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성령님께 묻습니다. 이사를 갈 때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순종합니다. 전공을 선택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도 성령님께 의견을 묻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도 성령님께 솔직하게 내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외로움이나 슬픔도
성령님과 나눕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십니다.

인생이 삭막하다고 느낄 때 우리가 성령님을 간절하게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내
고독한 영혼을 끌어 안아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고,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사역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따스한 성령님, 한 줄기 빛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그 사랑을 느끼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에서 예배하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에서 예배하네. ♬
(부르신 곳에서. At the place where you call)

▶ 그런데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나오든 나오지 않든,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야 할 죄인입니다. 이런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를 위해 고통을 받으시고, 끝까지 참고, 결국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오래 전 사건이지만, 일본 동경에서는 14세 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성적이 떨어져서 꾸중하는
어머니에게 앙심을 품고 칼과 쇠망치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까지 죽였습니다.
이 학생은 정신 이상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저지른 후에 친구들을 불러서 태연하게 사실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인간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을까요?

셰익스피어가 쓴 <맥베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맥베드는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손을 씻고 증거를 인멸해도 마음 속의 살인 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사는 이 병은 자신이 고칠 병이 아니라고 하면서,
왕 스스로 마음에서 고치라고 합니다. 그러자 맥베드는 외칩니다. “오! 아라비아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 말끔히 할 수 없는가? 이것을 파내 버릴 망각제는 세상에 없는 것일까?”라고 탄식을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씻을 수는 없다. 자신의 죄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는 것은 지구상에 없다.
자기 마음으로도 안 되고, 그 무엇으로도 안 된다. 이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 여러분, 인간이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피 외에는 없습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피가 내 죄를 씻어주십니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마5:23-24)

만약 우리가 완고한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6:14-15)

같은 교인끼리든, 이웃교회와의 관계든, 앙심을 품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잘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걱정거리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형제나 자매를 오늘 당장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엡4:32)



2. 분노를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 ( 성령 )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엡4:26)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 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죄인인가를 잘 아셨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죄가 자신의 영혼에 스며들고, 그 죄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실을 영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령님을 사모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자신의 연약한 감정을 다스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부패한 죄성을 아직도 간직한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옵니다. 끔찍한 상상과 미움이 우리 영혼을 파고
들어옵니다. 이유조차 모르는 복수심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피해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를
욕하고 다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고 싶지만 날마다 실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분노를 넘어서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고 더 큰 내 죄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분노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런 순간에도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억울하고 속상한 내 마음을 다스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십니다. 치료해 주십니다.
상처를 낫게 하시고,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귀신 들린 여종이
여러 날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했습니다. 사실 그 귀신이 바른 말을 하기는 했습니다.
“이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하고 외쳤다. 그 여자가 여러 날을 두고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귀찮게 여기고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하고 말하니,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행16:17-18)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 여종이 귀신이 들려서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고, 그 대가를
챙기던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자기 여종이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손해를 본
이 사람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치안관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 사람들인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치안관들은 한 쪽 말만 듣고, 바울과 실라를
체포하여 옷을 벗기고 매질을 했습니다. 정신까지 잃었던 바울이 밤에 깨어나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비록 억울하게 매를
맞았지만 바울의 마음은 기뻤습니다.

☞ 왜일까요?

그 이유는 바울이 성령님으로부터 쓰임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서 귀신 들렸던
저 여종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사람 구실 못하던 한 사람이 드디어 사람다워지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이 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구원받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기뻤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나를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다니….

우리는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전한 말 때문에 한 영혼은 시험에 들고 교회에도 안 나올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전한 말 때문에 한 영혼은 시험을 이기고,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전한 말 때문에 성령님께서 기뻐하실 수도 있고, 슬퍼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께 순종하여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엡4:30)

내가 진심으로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내 분노를 가라앉혀 주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내가 겸손하고 진실한지 알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터치해주지 않으시면 나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나는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소중한 은혜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하실 때에야 내가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말과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전2:5)

성령님을 사모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성령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십니다. 은혜를 누립니다. 기뻐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몸을 감쌉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전2:12)


(1) 여러분은 이 순간부터 시작해서 성령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2) 내 감정을 다스려 달라고 성령님께 요청하시겠습니까?
(3) 성령님께서 늘 나와 동행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하시겠습니까?




[ 기 도 ]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우리가 내 힘으로 살고 있는지,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여 주소서.
내 힘으로 용서가 되지 않던 사람을 이제부터 성령님의 도움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대표기도를 하지 못하고,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이제부터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는 성령님께 감사 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감정도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여 주세요.
내가 걸어갈 때 힘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어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