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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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사람(People of Littl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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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06-1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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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6월 17일

믿음이 적은 사람。

( 마 17: 14 ~ 20 )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합니다. 성령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언하십니다(롬8:15-16).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이타적인 성격,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초자연적인 능력, 행복과 감사, 보호와 은혜 등등.

그런데 문제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를 우리에게서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과연 세상 사람들과 확연히 다릅니까? 우리에게는 시기와 질투, 오해, 원망, 험담, 다툼, 불평, 분열이 없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시간마다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욕구불만에 찬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요?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이 정말 내 마음에 흐르고 있을까요?

몇 년 전에 받았던 씨앗들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텃밭에 뿌려서 물도 주고 거름도 주었습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어떤 씨앗은 생명이 있어서 싹이 나고 자란 반면에 어떤 씨앗은 이미 죽었는지 전혀 싹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씨앗 속에 생명이 있다면, 분명 흙 속에서 생명이 착근되어 뿌리를 내렸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가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분명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과 생명력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와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고, 주님이 내 안에 머물러 계신다면,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5장).

미국 정치가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수박씨의 위대한 힘”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생명이란 엄청난 능력과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나는 수박씨의 힘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수박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다.
자기보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수박씨가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색을 껍질 바깥으로 우러나오게 하고, 그 안쪽에 하얀 껍질, 그 안쪽에 다시 검은 씨가 촘촘히 박힌 붉은 색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 하나하나의 씨는 또다시 차례차례 자기 무게의 20만 배를 뚫고 나올 것이다. 이 수박씨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면, 나도 신의 신비를 설명해 주겠다.”(웨인 다이어, 하루 경영. 청림출판사. p. 310)

▷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자신들이 귀신들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주님은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이 대단히 적습니다. 약합니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현실의 문제를 밀어낼 힘이 없습니다. 난관을 뚫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부족합니다.

☞ 그런데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따라서 오늘 말씀은 무기력감과 우울과 낙심에 자주 빠지는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세상에 나가 담대하게 살려면
어떤 믿음을 회복해야 할까요?



1. 믿음은 나 혼자서 만들지 못한다. 주님과 ( 함께 ) 있을 때 생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너라.”(마17:17)

제자들은 주님과 같이 있을 때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떨어져 혼자 있을 때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나 혼자서 “믿습니다~”라고 외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신뢰할 만한 대상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지, 나 혼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신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서 오는 사람을 보고 놀라서 외쳤습니다. “유령이다~” 너무 겁이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마14:27~31)

▶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 물 위를 걸어서 주님께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중력의 법칙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자신도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허영심 때문입니다. 몸이 무거운 내가 과연 물 위를 걸을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고 가면 되었을 텐데, 중간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는 것을 보고 겁이 납니다. 물에 빠져 들어갑니다. 죽을 것만 같아서 겁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풍랑이 크게 일어나면 대단히 무섭습니다. 더구나 환한 대낮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라면 더욱 두렵습니다. 우리의 삶에 풍랑이 곧잘 찾아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경제적인 파산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녀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도 생깁니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부부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풍랑은 높은 파도를 일으키고,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 넣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말씀은 우리 삶에서 어려운 위기가 지나갔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파도는 여전히 높지만, 바람이 여전히 강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면, 고요해 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기도를 왜 못할까요?
교회 안에서도 보면 기도를 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집사님, 식사 감사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못한다고 손을 절레 절레 흔듭니다. 예배사역부장 집사님이 다음 달에 주일예배 대표기도 순서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면, 완강하게 거절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 여러분, 우리가 왜 기도를 하지 못할까요?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떨려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목사님 앞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관계가 아직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다정하게 대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서먹서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생명의 삶을 묵상하며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말하는 훈련이 평소에 되어야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낸 부모님과 통화가 되면 할 말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처럼.

♣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겠습니까? 성령님을 의지할 때만 전도가 가능하고, 그 결과를 성령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사례) 비가 새는 것을 보고, 지붕에 올라가서 손을 봐야겠다고 아버지가 사다리를 준비해서 올라갑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아버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기분이 어떨까? 지붕 위에서 이 동네를 둘러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호기심이 생긴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도 올라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지붕 위에서 아들에게 올라오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사다리를 밟고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아들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를 쳐다봅니다. 순간, 아이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걸어서 올라온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그 순간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얼굴은 파랗게 질렸습니다. 이 때 지붕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래는 쳐다보지 말고, 위만 바라보고 올라오너라. 아빠만 바라봐~. 그러면 겁이 나지 않을거야~.”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늘 위를 쳐다보며 살아야 합니다. 위를 쳐다보면 그 곳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미소 짓고 계십니다. 우리 손을 잡아주시는 든든한 분이 계십니다.

♥ 인생이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분의 자녀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입니다.
사랑의 노래입니다. 주님과 내가 함께 부르는 합창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이 세상이 멸망한다해도 지속되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신뢰하고 매사에 함께 할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



2.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 하나님 )은 산을 옮기고 나를 변화시킨다.



<반신반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반은 믿고 절반은 의심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은 믿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믿고는 싶은데 믿어지지가 않을 때 사용합니다. 한 마디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경험의 동물입니다. 한 두 번 실패한 경험이 쌓이면 이것이 우리의 뇌에 각인을 시킵니다. 안 돼~. 노력해도 안 돼~. 부정적인 태도로 바뀝니다. 이것이 굳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이 가능하다는 말을 해 줘도 믿지 못합니다.

“귀신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번, 불 속에도 던지고, 물 속에도 던졌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막 9:22~24)

나는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이 아버지는 의심이 깊어갑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훌륭하다는 의사를 찾아갔지만 엄청난 치료비도 지불했지만, 모든 의사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수 많은 점쟁이들에게도 갔습니다. 궂을 하라면 했습니다. 부적을 사라고 하며 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상들에게 속았습니다. 예수님이 신통하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왔지만 역시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복된 실망이 이제 이 사람의 속마음을 까맣게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이 사람에게 도전합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사람의 확신이나 욕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나로서는 불가능하더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 여러분,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있겠습니까?

(사례) 미국에 <캐서린 쿨만>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분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는데, 병을 고치는 능력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이 분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한 번은 미국 텔레비전에서 이 분이 병자를 치료하는 이적을 촬영해서 방영한 적도 있습니다. 이 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병자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안수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안수기도를 받은 병자들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지만, 환자의 병이 치유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분은 평생 하나님께 받은 이 은사를 사용해서 수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는 귀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정작 이 분 자신이 병들었을 때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자신이 기도해서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 분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쓰임받은 것이지, 이 분 자신이 능력자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가지 질병을 고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있는 병은 스스로 치료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귀신도 내쫓았습니다. 독사에 물린 적도 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런 기적을 행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예수님,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쓰임받는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내가 주의 종으로서 섬길 수 있다니,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 알고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 하나님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내 경험으로 교회를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속단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내 욕심,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판단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마치 큰 수술을 받기 전에, 의사는 환자와 그의 가족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습니다. 만약 이 수술이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하여 수용한다는 싸인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 생명의 주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모릅니다.

우리도 하나님은 나를 언제나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입니다. 깨끗한 믿음입니다.

바울이 영적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딤후 1:5)

어느 교회 목사님이 암으로 고생하는 성도님을 방문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평소 이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아끼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이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도가 목사님을 보자 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이 병이 꼭 나을 줄로 믿습니다.”
목사님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병이 낫든 낫지 않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래서 그 성도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만일에 안 나으면요?”
-“아~.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까?”
-“형제님이 아시듯 저 또한 형제님의 암이 빨리 치료되어서 건강하게 퇴원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모릅니다. 만약 그 결과가 우리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낫지 않고 죽게 되면
하나님을 부인하실 겁니까?”
그제서야 그 형제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비록 제가 낫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걷지 못한 채 구걸하고 있는 사람을 봅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쳐다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 사람을 낫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걷게 됩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사람은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굉장한 신비스런 인물로 추앙하듯 쳐다봅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행3:12)
베드로의 말은 자신의 경건한 신앙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그저 주님께 쓰임받았을 뿐, 주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칭찬받을 일도 없고, 존경받을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른 믿음입니다. 건강한 믿음이요, 겸손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태산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작은 습관 하나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나를 맡기면 하나님은 고치주십니다.
우리는 근심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수박씨가 자기 몸의 20만 배의 무게를 뚫고 땅 위로 올라오듯,
우리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생명력으로 간직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나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요한일서 5:4)



[ 기 도 ]

하나님,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저희들은 낙심하곤 했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고, 땀 흘려도 안 되는 일 앞에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움츠러들고, 믿음이 점점 식어진 저희들에게
건강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나 자신의 감정이나 확신에 근거한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확신하여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