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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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날마다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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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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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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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5월 6일

자녀에게 날마다 축복을。

( 민 6: 22 ~ 27 )



송길원목사님이 쓴 글에 보면, 조 장로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 장로님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고위직까지 지내신 분으로, 동료나 선후배에게 신망이 두터운 분입니다. 장학회를 만들어 꿈나무를 키워 내실 정도로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에게는 가정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아들의 메모장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너무도 놀란 아내는 장로님이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따졌다고 합니다. “도대체 당신이 아들에게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상처가 되었느냐?”고.
장로님도 기가 막혔습니다. 장로님은 그 후 아버지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퇴근을 했는데 아들이 방문을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은 아내에게 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상한 편지를 받더니 저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상한 편지란
장로님이 아버지학교에서 쓴 편지와 코팅까지 해서 아들에게 보낸, <아들이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라는 편지였습니다. 대학교 입학 시험(수능) 3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드디어 수능을 치르던 날, 아들이 시험장으로 가며 아버지에게 “그 동안 괴로움을 끼쳐 죄송하다”는 유언 비슷한 말을 남겼는데, 삼수까지 한 아들의 이야기에 장로님은 가슴이 덜컹하셨다고 합니다. 그 날 저녁,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시험 잘 쳤느냐?”고 물었더니 1개 틀렸다고 하더랍니다. 아들은 명문대학 법대를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 그 동안 이 가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장로님은 아버지학교에 다닌 뒤부터 매일 아침마다 아들을 껴안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끝마다
‘우리 아들 최고~’라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신바람이 났던 건지, 잠재력이 폭발했습니다.
두 번 떨어지고 세번째 도전한 시험에서 멋진 역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성적 예언>이라고 합니다. 너는 잘 할 수 있어, 너의 잠재력을 볼 때 최고가 될 거야, 너는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어. 이런 예언적인 말을 해주면 많은 학생들이 그 말에 영향을 받아 결국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지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이다”라고 했더니, 평균 점수가 올랐습니다.

▶ 자녀에게 던지는 칭찬이나 격려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정서적인 안정감을 심어줍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성취 동기를 자극합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은 자녀를 아프게 하고 무기력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니?” “네 실력에 잠이 오냐?” 심지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녀를 속으로 무시하는 태도나 얼굴 표정까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 자녀와의 관계가 만약 서먹서먹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 기도>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부모의 기대와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자녀를 그렇게 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처럼, 우리 자녀들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축복의 내용들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1. 하나님께서 너를 ( 보호 )해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민6:24)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빌 때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은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신다는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 가정에 적용시킨다면, 당신들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 자녀의 이름을 넣어서 축복하면 됩니다.

- 주님께서 명인이에게 복을 주시고, 명인이를 지켜 주신단다.
- 하나님께서 서아에게 복을 주시고, 서아를 지켜 주신단다.

이렇게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숙제 했니? 공부 열심히 해~. 이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부모의 당부이고 잔소리입니다. 축복이란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축복은 우리가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빌 축, 복을 비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복을 받도록 하나님께 빌지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 주체가 명확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주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신단다. 엄마 아빠가 너에게 복을 주는 것이 아니야. 엄마 아빠는 네가 잘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린단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자녀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할 복은 바로 <지켜 주시는 복>입니다.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받는 것입니다. 스포켄 시에서 1년 예산을 집행하고 나서 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서에 보면, 해마다 가장 많이 지출한 항목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Public Safety. 안전에 관한 예산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다양한 활동과 의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국방이 튼튼해야 하는 것이지요. 교육보다 안전이 더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피곤한 몸으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합시다. 여러분, 공부가 중요합니까, 안전이 중요합니까? 횡단보도를 건널 때 주위를 잘 살피고 건너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아니면 성적이 C학점에서 B학점으로 오르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렇지, 사실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생각해 보면, 자녀가 건강하기만 해도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만약 다른 걸 다 잘한다 하더라도 자녀가 아파서 시름 시름 앓는다면 다른 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평생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23:5)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셨다는 점은 우리가 쉽게 이해가 되는데,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셨다는 말은 우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이 보호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일까요? 목축업을 하면 특히 여름에 파리들이 양들을 그렇게 괴롭힌다고 합니다.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극성스러울 정도라고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파리들이 양들의 축축한 코 점막에 알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2~3일이 지나면 그 알들은 유충이 되고, 양들의 코 안으로 들어갑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유충들이 양의 뇌 속까지 들어가서 염증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무에 머리를 쥐어 박습니다. 딱딱한 땅에 자기 머리를 찧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양을 자살로까지 내 모는 파리가 바로 코파리들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파리들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목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목자는 양들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름이 양의 코에 흘러내리면 코 파리들은 기름 때문에 양에게 달려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름이 코 파리들의 접근을 막아주는 것이지요. 우리도 날파리가 극성을 부리는 계절에는 스프레이로 된 뿌리는 약을 몸에 발라주지 않습니까? 귀한 손님에게만 이런 기름을 발라주는 것이 아니라, 양들에게도 발라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들은 코 파리들로부터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즘 세상처럼 우리 자녀들에게 유혹이 많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 식품 먹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유혹은 유혹 축에도 들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마약, 게임, 탈선을 조장하는 파티 등. 실로 자녀들의 보호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자녀에게 복을 빌어주고, 자녀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서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은 너에게 ( 은혜 )를 베푸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민6:25)

주님은 나를 밝은 얼굴로 대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미지입니다. 신관이 건강하면 삶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 이미지가 무섭고 두려우면 그의 삶도 불안해집니다. 여러분은 꿈을 꾸시면 밝은 꿈을 꾸십니까? 아니면 무서운 꿈을 꾸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무서운 꿈에 시달린다면, 여러분의 신관, 즉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기도만 하면 우는 분이 계셔요. 옆에서 기도를 들어보면, 그 내용은 모르지만, 분위기가 늘 슬픕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밝게 웃는 얼굴을 연상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갔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자 마자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 때,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밝은 얼굴로 대하신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면 달려가서 와락 안깁니다. 얼굴 표정이 밝아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자 마자 반가워서 얼굴이 환해 지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떨어졌던 군인 가족들이 재회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이 동영상에는 대사가 없었고, 대본도 없었습니다. 자막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우리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족이란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미울 때가 있습니다. 가장 큰 위로를 주어야 할 가족이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을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은 밝은 얼굴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만나는 가족에게 밝은 얼굴로 대한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다는 점을. 하지만 우리가 자녀에게 축복을 할 때는 하나님께서 너를 밝은 얼굴로 대하신다고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얼굴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는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란 얼굴에 묻어서 보입니다. 얼굴이 밝으면 마음이 즐거운 것이고, 표정이 어두우면 마음도 어둡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학생증을 만들거나 운전면허증을 만들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얼굴만 나오는 사진을 찍습니다. 왜일까요?
얼굴이 그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자녀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어떤 얼굴로 바라보실 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사람쪽으로 고개를 돌리십니다. 그 얼굴을 쳐다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고개를 옆으로 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는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리워합니다. 박인희씨가 쓴 얼굴이라는 시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얼굴

-박인희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시67:1-2)

우리는 자녀가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자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축복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너에게 미소 지으셔. 하나님은 오늘도 너에게 은혜를 주신단다.

자녀가 잠 자리에 들었을 때도 이렇게 기도하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꿈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실거야. 잘 자. 하나님은 너를 꿈 속에서도 은혜를 베푸실거야. 걱정 말고 잘 자.



3. 하나님은 너의 마음에 ( 평안 )을 주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
(민6:26-27)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는 더욱 변화 속도가 빨라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요? 더욱 불안해집니다. 미래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증폭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되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던 분은 회사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잘 나가던 배우나 정치인은 하나의 사건 때문에 인생이 주저 앉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불미스러운 과거 사건이 최근에 드러나서 모습을 감춘 유명인들을 목격하곤 합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마음의 안정입니다. 평안입니다. 이것은 내가 감정을 의도적으로 가라앉히는 요가 또는 명상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평안입니다. 이것은 내가 원한다고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평안을 주실 때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14:27)

성경의 언어 가운데 독특한 언어가 있습니다. 샬롬이라는 인사말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인의 언어이고 아주 독특한 단어입니다. 샬롬~. 평안, 안녕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 임마누엘, 샬롬이라고 표현합니다.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바랄 때도 샬롬이라고 인사합니다. 기도입니다. 축복의 단어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아침에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저녁에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병원에 누어서 치료를 받는 애인에게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아버지에게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아주 멀리 떠나는 친구에게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에게도 샬롬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샬롬은 바로 평화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샬롬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녀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면, 진심을 담아 자녀에게 샬롬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이 임하면 자녀는 고요해집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합니다. 더 이상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는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나를 편하게 대할 수 있어야
가족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나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내가 나를 한심하다고 여긴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샬롬을 줄 수 없습니다. Peace maker가 되지 못하고
Trouble maker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과 나 사이를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10절)

우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부모님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는지, 아니면 불편하게 하셨는지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부모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자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부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늘 잔잔하고 기쁘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살전5:23-24)

옆에 분에게 연습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내 자녀의 이름을 넣어서 축복하겠습니다.

B.C. 605년 자신의 나라가 망해서 외국으로 포로 신세가 되어 끌려갔던 10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이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의 이름까지 바꿔 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도 없고, 조국에 대한 긍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 네 젊은이들이 지식을 얻게 하시고, 문학과 학문에 능통하게 하셨다.
그 밖에도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온갖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주셨다.”(단1:17)

하나님께 복 주시는 사람을 이 세상이 어떻게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도 자녀의 삶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복을 빌라고.
우리 욕심이 앞서면 안 됩니다. 성급하면 교육을 망칩니다. 편애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법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축복할까요? 자녀 마음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기를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부모가 변하면 자녀가 바뀝니다. 부모가 달라지지 않으면 자녀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태도가 바뀌면 자녀의 인생이 역전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날마다 자녀에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응답하겠습니다.




[ 기 도 ]

하나님,
내 눈에 보이는 자녀의 모습만을 보면서 속이 타곤 했던 저희들입니다.
자녀의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자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축복의 말을 해주기보다는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자녀의 문제점만 보았지, 내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고 자녀의 삶을 긍정적으로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삶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그 전에 먼저 부모인 우리가 자녀의 삶에 복을 빌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도 잠 들기 전에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일 아침 일어나면 조용히 축복 기도를 드리게 하여 주소서.
밝은 표정으로 대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연상하면서
우리도 밝은 얼굴로 자녀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게 하여 주소서.
쑥스러움을 이기고 하나씩, 작은 것부터 용기를 내어 표현하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