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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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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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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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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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4월 29일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실까?

( 마 7: 13 ~ 14 )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2,5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응답을 분석해보자 약 30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결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선택과 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목적이 분명합니다. 여러가지를 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에 몰입하는 사람이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Longfellow)는 “결단하라, 그러면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혼도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을 다 사랑하겠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자신의 호기심과 육체적 욕망을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랑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동물적인 욕구 충족이 아닙니다. 내가 한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아름다운 면과 추한 면, 건강한 부분과 병든 부분까지 내가 수용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중간에 어떤 변화 요인이 생기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결혼을 할까 말까,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은데, 하며 고민만 하는 사람은 결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신뢰가 있습니다. 안정감을 느낍니다. 참 사랑은 영혼의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신앙도 일종의 결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들, 모든 우상들을 다 멀리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알고 섬기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요, 그 분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분이라는 고백을 할 때 신앙이 시작됩니다. 주님만이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요, 생명의 길이며, 영원한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을 주시는 분이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넓은 문으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걸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을 써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눅13:24)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력하라, 수고하며 애를 쓰라(딤전4:10)는 뜻입니다. 마치 권투선수가 링 안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듯이 그렇게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딤전6:12). 그렇다면 그 문이란, 그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주님 자신이 문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요10:9).

☞ 우리가 왜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야 하는지 주님께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1. 넓은 문이란 노력하지 않고 쉽게 사는 길이다. 그 끝은 ( 멸망 )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마7:13)

사람은 본성상 힘든 길을 피하려고 합니다. 편한 길을 원합니다. 땀을 흘려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고 싶습니다. 도둑놈 심보이고 강도 심리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모든 소중한 것들은 수고하지 않고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씨가 정직한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은 학생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쉽게 쉽게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넓은 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에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성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기뻐하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더욱 경건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룩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존재는 아닙니다. 선과 악이 늘 공존하는 갈등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갈등 속에서 우리는 선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선을 선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선해서가 아닙니다.

※ 이러한 신앙생활을 성경에서는 세 가지 직업에 비유했습니다.

첫째 농부, 둘째 군인, 셋째 운동선수입니다. 이 세가지 직업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준비하는 직업입니다. 노력하는 직업입니다. 땀을 흘리는 직업입니다. 준비한 만큼 수확이 있습니다. 잘 준비하는 농부는 풍성한 수확을 거둡니다. 잘 준비한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잘 준비한 운동 선수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땁니다.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국민들 전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긍심을 갖게 합니다.

만약 농부가 땀 흘리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될까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군인이 훈련을 게을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쟁에서 죽습니다. 운동선수가 땀을 흘리지 않으면 그 경기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주님은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사람, 봉사하기를 싫어하는 사람, 수고하지 않고 보상을 바라는 사람이 모두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 또한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뜻은 절제하지 않고 육체의 욕망대로 산다는 뜻입니다.

노아 시대 때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법이 없었습니다. 표준이나 삶의 규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약한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의 밥이었습니다.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짓밟았습니다. 사람들은 방탕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아내를 얻었습니다. 일부 다처주의가 성행했습니다.
사회 전체가 부패했습니다. 악이 고함을 쳤고 선은 힘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넓은 길로 걸었습니다. 자기 욕망대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고, 120년 동안 기다리셨지만, 이들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명을 심판으로 빼앗았습니다. 물로 심판한 것입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노아의 가족 8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산 위에 방주를 지었습니다. 40일 동안 밤낮 비가 내리기 전에 가족들은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문이 좁았습니다. 그 숫자가 적었습니다. 좁은 길, 좁은 문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정신은 어떨까요?

우리들 또한 욕망의 덫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서 편안하게 사는 삶을 꿈 꿉니다. 남들로부터 사랑받고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합니다. 화려하고 폼 나는 삶을 동경합니다. 이러한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한 작품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이 쓴, <목걸이>라는 소설입니다. 여자 주인공 마틸드는 아주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그녀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지참금이 없어서 원하지 않았던 아주 가난한 남자, 교육부에 다니는 직원과 결혼합니다.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고, 화려한 사교계에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교육부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이 부부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마틸드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원래 집을 사려고 모아 두었던 돈 400프랑을 옷을 사는데 과감히 씁니다.
파티에 입고 나갈 옷을 사려고 큰 돈을 쓴 것이지요. 그런데 옷을 입고 보니 목이 허전했습니다. 이 옷에 어울리는 예쁜 목걸이가 필요했습니다. 목걸이를 살 돈은 없었기 때문에 돈 많은 친구에게 진부목걸이를 빌려서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평소 꿈 꾸었던 대로 파티에서 여러 남자들과 춤을 춥니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사교계의 여왕이 된 듯한 황홀한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부터 아름답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목걸이가 없었습니다. 도둑 맞은 것입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그녀는 고심 끝에 할 수 없이 36,000프랑이나 되는 빚을 지고 똑 같은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이 빚을 갚기 위해 마틸드 부부는 10년 동안 정말 고생합니다.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그토록 어마어마한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빚을 다 갚을 무렵 어느 날, 고생으로 찌들어 있는 마틸드에게 10년 전 그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친구가 말합니다. 그 때 너에게 빌려주었던 목걸이는 가짜였다고.

예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허망하고 부질없는 삶을 살면 안 되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 쓰라고 하십니다.




2. 좁은 문이란 믿음으로 걷는 길이다. 그 끝은 ( 영생 )이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마7:14)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 가장 소중함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런데 생명은 수고와 고통을 요구합니다. 엄마가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10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또한 출산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수고와 희생만큼 기쁨이 큽니다. 행복을 느낍니다. 따라서 우리가 날마다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하루는 천잠나비, 다른 말로 참나무산 누에 나방이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여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 누에는 안에서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하나 뚫고는 그 틈으로 몸 전체가 나오기 위하여 꼬박 반나절을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면서 아주 힘든 고통을 치르면서 결국 나비가 되어 나왔습니다. 알프레드는 이 모습을 보고 측은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도 사는 것이 힘든데, 저 누에 나방도 저토록 고생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가위로 잘라서 좀 넓혀주었습니다. 나방은 쉽게 밖으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방은 영롱한 빛깔의 날개를 가지고 금방 팔랑거리며 날아가는데, 쉽사리 구멍을 벗어난 나방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그 무늬나 빛깔도 영 곱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푸덕푸덕 날개 짓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학자가 애처롭게 여겨서 베푼 자비가 도리어 나방을 죽인 셈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이 영 안타까워서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열어주면, 그 자식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망가지는 경우입니다. 자식이 돈을 요구할 때마다 다 주면 어떻게 될까요? 자녀가 가난도 모르고, 역경도 모른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도 많으시고, 지혜도 많으시며,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인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쉽게 낫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고난의 길이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땅으로 갑니다. 나그네처럼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의지할 친척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과정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낯선 타국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발 붙일 땅 한 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은 그를 부자로 만드셨습니다. 토지가 많아졌습니다. 자손이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늘 그와 동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인류 모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 여러분, 무엇이 복입니까?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입니까? 나를 만나고, 나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복입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을 거쳐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더 좋아지고, 행복해져서 떠나게 하라. 당신 얼굴에 친절이,
눈에도 친절이, 따뜻한 인사 속에서도 친절이 서려 있게 하라.”(Mother Teresa)

마더 테레사 수녀는 좁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대접받는 길을 버리고, 도리어 가난한 사람을 섬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 옆으로 간 것이 아니라,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 오늘날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말이 많고 시끄러울까요?

그것은 남을 대접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대접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받기 위해서 사신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서 사셨습니다. 으뜸이 되려고 노력하신 것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는 종으로서 헌신하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마20:28)

불평은 언제나 받으려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베풀려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거저 받았다고 깨달은 사람은 거저 베풀 줄 압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불행하지 않습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있을 때는 감사하고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 의식이 있는 성도는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합니다.
베풀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주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그냥 베푸는 것이지요. 그러나 넓은 길을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받았으면 나도 상대방을 사랑합니다. 만약 내가 미움을 받았으면 상대방을 미워합니다. 내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것을 빼앗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않습니다.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사모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무 조건없이 그냥 좋아해 주셨기에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은혜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나도 내 주위 사람들을 그냥 사랑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사랑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 각각 다릅니다. 똑 같은 선물을 주어도 반응이 다릅니다.
반응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준 선물을 도로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주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평화에 평화를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사26:3)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렘17:7-8)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늘 베푸는 마음으로 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사는 것이 힘들어서, 순간 순간마다 우리는 편안해지고 싶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눈치껏 적당히 하고, 남들에게 적당히 거짓말도 하면서 살아야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선택해서 갈지라도
저희들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이 좁은 길을 걷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부귀 영화 모두 내어버리고
주님의 말씀 순종하여 생명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밤낮 기뻐하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