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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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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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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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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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4월 8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
( 행 3: 11 ~ 16 )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나의 부활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가장 좋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저의 숙부(작은 아버지)께서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숙모님이 외상을 준 사람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숙부는 “내가 왜 죽어?”라면서 자신의 죽음을
부인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주위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장으로 지내던
어느 교수님은 위암으로 죽을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죽어가는 남편에게 부인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처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께 부탁합니다. 남편으로부터 유서나
유언이라도 좀 받아달라고. 목사님은 병실을 찾아가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의학적으로 며칠 못 살 것 같습니다. 이제 유언을 하셔야 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분은 “내가 왜
죽어?” 하면서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 날 몇 시간 후에 그 분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 자신의 죽음을 시인하고 준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것처럼
확실한 사건은 없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죽음처럼 확실한 미래의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라고 알려줍니다(고전15:52).

지난 주일(부활절) 저는 사랑 목장 식구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제 옆에는
홍두희(James D. Hong)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평생을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살다가, 지난 달
처음으로 감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 5일 동안 치료를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월요일) 잠이 든 상태에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화요일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주간 내내 삶과 죽음, 인생의 짧음과 부활 후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 자의 죽음을 알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첫째 유형은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고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좀 더 살아보려고, 죽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주름살이 늘면 호들갑을 떱니다. 몸이 아프면 나 죽는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몸에 좋다는 것은 이성을 못 차리고 먹습니다.

둘째 유형은 허무하다고 느끼거나 방탕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다 죽는 거야~”라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삽니다. 그런가 하면
정신세계가 허무한 상념에 빠집니다. 슬픈 음악을 듣거나,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합니다.

셋째 유형은 죽음을 받아들이되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고전15:19, 22)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 성령 )은 나에게 그 관계를 깨닫게 해준다.
아무리 위대한 사건이 있어도 내가 그것을 믿지 않으면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2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한다는 이 사실을 내가 믿지 않으면 나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의
부활이 어쨌다는 건가? 나와 무슨 관계인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건으로 여기게 됩니다.

▶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동시켜 주실 때 내가 믿게 됩니다. 내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바라면 성령님은 반드시 나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되는 것을 성령님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죄 때문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성령님의 도움을 바라면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고 느껴지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성경의 진리가 깨달아지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 7명은 “고기나 잡으러 가자~.”라고 말하면서, 디베랴
바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기는 한 마디도 잡지 못했습니다. 내가 왜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의미도 없었습니다. 목적도 없었습니다. 분명 부활하신 주님은 만났지만,
아직 제자들 마음에는 주님의 사건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겁을 먹고 다들 도망갔다는 기억 때문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다시 나타나셨고, 제자들을 위해 새벽 차가운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워
주셨습니다. 빵도 나눠주면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행1:3) 그리고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부탁입니다. ☞ 그것이 무엇일까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1:4-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세계로 흩어져서 리더가 되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원이나 학교를 세우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령님께서 제자들 마음에 임하셔야,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한 용서의 사건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믿는 자들도 부활시켜
주실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바로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구나~.
◊하나님은 나를 위한 영원한 계획을 세워 놓으셨구나~.
◊하나님은 내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3

내 힘으로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 내 명의로는 불가능합니다.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는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라는 이름으로는 아픈 사람을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지체
장애인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풍성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구걸하던 그 장애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행3:6~8)

▷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장 쓸 수 있는 캐쉬가 없을 수 있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금도 주님은 그들의 상처를 낫게 하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비록 내 이름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 성령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귀한 사역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변화시키시는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해주십니다. 가난한 나를
부하게 하십니다. 눈 먼 날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중독에 걸려 보신 분들은 이미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마약을 내 맘대로 끊을 수
있습니까?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내 마음이라도 내가 조절할 수
없습니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산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신상품이 나오면 우리는 또 갖고 싶어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속을 썩이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을
능력은 내 성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실 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속 썩이는 자녀를 혼내지 않고, 이해하며 기다려주는 힘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주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고전6:19)

2. 우리는 ( 부활 )의 증인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자.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행3:15)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자, 예수님의 사랑이 지금도 나에게
흐르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순종하는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제자들은 이제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법정의 증인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싸움의 대상인 상대측으로부터
협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했습니다. 내 목숨을 내어주고 죽음을 치르더라도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사실대로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죽음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사랑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죽으면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죽어도 영원히
계속되는 영원한 로맨스이기 때문입니다.

4

▷ 혹시 여러분 중에서 이탈리아를 여행해 보신 분 계십니까?
이탈리아에 가셔서 무엇을 보셨나요? 바티칸 궁전, 박물관,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 영화
쿼바디스의 촬영 장소, 벤허 촬영 장소 등. 볼 곳도 많고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도 많습니다.
한국의 어느 목사님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가이드 해주는 한국 분을 만났다고 합니다.
자신은 본래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로마에서 관광학을 전공한 뒤에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이탈리아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공부하면서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다가 카타콤
(Catacomb)을 보게 되었답니다. ※ 로마 카타콤 사진들, 영상으로 보여주세요!
카타콤은 산 속에 있는 굴이 아니라, 로마 시내 한복판에 땅을 파서 인공적으로 만든 굴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긴 굴이 이어져 있고, 벽 여기 저기에는 성경 귀절도 씌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뼈도 많다고 합니다. 여행 가이드를 하는 그 집사님은 자신의 인생이
이 곳을 방문하면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더랍니다.

☞ “저는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다른 관광지라면 제가 다양한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여기에만 오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어두운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단 한 가지 사실을 믿고 소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자신들도
부활하게 될 날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의 화려한 삶보다 이 곳에서 부활을 소망하며 사는 삶이 더
귀하다는 것을 그들의 인생이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 그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화려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사자 밥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크리스천들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수 많은 선교사님들은 이 부활 신앙 하나 때문에
낙심을 이기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 여러분 중에서 터키를 여행해 보신 분 계십니까?
터키에 가면 카파도키아(Cappadocia) 곳이 있습니다. ※ 사진을 영상으로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7세기 중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숨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지하 도시를 건설했고, 그 속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데린쿠유(Derinkuyu)라는 동굴은 지하 30미터 깊이에 있는데, 무려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 동굴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곳을 다녀오신 분에 의하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를 따라 서로 왕래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만약 로마 군인이나 이슬람 왕조가 이 곳을 봉쇄하여, 통로 앞 쪽과 뒤 쪽을
막아 버리면, 그 안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는 태양조차
그들은 마음껏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그들의 영혼을 만족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게 해주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하며 하루 하루를 산다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바뀔까요?
오늘 당장 죽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밤 잠이 들고, 내일 아침 천국에서 눈을
떠서 아침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 동안 수고했다, 그 동안 나를 사랑해서 네가 경건하게
살았구나~. 나와 함께 영원히 즐기자!” 주님은 우리 어깨를 감싸주시면서 그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21:3-4)

5

▶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오늘 죽어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으십니까?
주님은 우리 각 자에게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기 도 ]
하나님,
부활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 신앙 때문에 원수까지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부활 신앙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땅 속 굴속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이런 부활 신앙이 활활 타오르게 하여 주소서.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복잡한 문제가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죽을 줄 알았던 애벌레 몸에서 나비가 나와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육체는 약해지더라도 우리 영혼은 믿음의 날개를 활짝 펴게 하여 주세요.
믿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믿음으로 감사하게 하여 주소서.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살고 부활신앙으로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