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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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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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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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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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4월 1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 고전 15: 50 ~ 58 )

승자 효과(Winner Effect)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작은 성취를 많이 맛본 사람일수록, 큰
싸움에서도 이길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뇌 과학자요 신경 심리학자인 이언 로버트슨(Ian
Robertson)이 발표한 이론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이루어 냈을 때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미국 권투계의 프로모터인 돈 킹은 이 효과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성 있는 한 선수를 뽑았습니다. 마이크 타이슨. 그리고 그의 대진표를 처음엔
약한 상대, 그 다음에 이길 수 있는 좀 더 강한 상대,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상대 순으로
대진표를 짰습니다. 승리를 맛본 쾌감과 자신감이 생긴 선수에게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5만 명 이상의 정치인과 기업가를 만난 컨설팅의 대가 리웨이원(Li Wei Wen)은 세계 최고
인재들에게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기는 경험’에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오늘도 승리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나에게는 특별한 성공 비결이 없습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했을 뿐이죠. 나는 모든 열정을 이 일에 쏟아 부었으며, 결코 한눈을 팔지
않았어요~.” 그가 인터뷰했던 기업인 중 25%는 자신이 가장 능숙한 분야에 뛰어들어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75%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기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며, 어떤 업무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기는 사람들의
비밀. 출판사 갤리온. pp.318-319)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비밀은 당신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일에 숨어 있다.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또한 지금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죽음의 원인이었던 ‘인간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죽기까지 순종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3일만에
부활시킴으로써 가장 의미 있는 역사
적 사건이 되고, 가장 희망적인 사건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 예수님은 승리하시는 분이셨고,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분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과의 싸움에서도 주님은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자신을 오해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이해하셨습니다. 불법 재판과 악의로 대하는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말 그대로를 예수님 자신이 실천하신 것이지요. 높아지려는 인간적인 욕망과
살려고 하는 인간적인 본성과의 싸움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본성보다 우선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 우리 마음은 매 순간이 전쟁터입니다. 이기적이 될까, 이타적이 될까 서로 다툽니다. 강함과 약함.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욕심 가짐과 내려놓음.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비결을 알고
이기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은 우리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과연 우리가 어떻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죽음의 공포와 세상의 두려움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 사람은 모르겠다, 못 깨달았다, 놀랍다고 하지만 부활은 ( 사실적 ) 증거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고전15:51-52)

2

우리의 생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신비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생명의 신비가 있습니다. 나라는 생명체를 생각해 보세요. 나는 분명히
살아있는 생명체인데, 내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나는 모릅니다. 단지 과학을 통해서 인간의
출생 과정에 대하여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저에게 딸이 태어났을 때, 딸아이의 그 첫
모습을 기억합니다. 10개월동안 엄마의 자궁, 즉 물 속에서 있었는지 쭈글쭈글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못 생겼습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가고 몇 년이 흐르면서, 아기의 모습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더니, 여자
어린이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몸도 자라고, 뼈도 자라고, 얼굴은 여자의 모습으로,
정신은 어른스럽게, 성격은 부모를 닮아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만 신비한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신비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생명이 떠나갑니다. 어디에 숨어있다가 어디로 떠나는 지 모릅니다.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다가 육체 밖으로 떠난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영혼이 우리 몸 어디에 그동안 머물러 있었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뇌를 연구해봐도 영혼의
장소를 찾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음도 일종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활의 신비도 있습니다. 잠시 심장이 활동을 멎었다가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회생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완전히 죽었던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지식과 이해로 납득할 수 없어서 신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밀이라고 취급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는 비밀이 없습니다. 신비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적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인간,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생명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변화를 주도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부활이 하나님 앞에는
조금도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창조의 역사, 생명의 변화, 죽음과 부활, 이 모든
사건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일 전 다른 모든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제자들의 말을 의심하자, 이번에는 도마까지 있는
장소에 나타나셨습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20:26~29)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것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지은 죄 값을 십자가에서 모두 치르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 되심으로 나를 의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나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하심으로 나를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인류가 기록한 모든 기록물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기록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 사건과 그의
부활하셨다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거의 절반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기까지의 일주일 동안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닙니다. 신화도 아닙니다.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 기록입니다. 사건입니다.
시간이 분명하고 장소가 명확하며, 등장 인물들이 모두 생존했던 실제 인물들입니다. 사도
행전은 수 백 명의 순교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이 부활 사건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증언의 역사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보다 더 진실되고, 다수의 순교자를 낸
사건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면,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공모한 사건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증언했다고 해서 무슨 유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기에 진실하게 고백하고 죽은 것입니다. 한 나라 안에서만 일어났던
사건도 아닙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인류 역사는 바뀌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역사는
주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B.C.와 A.D.로 바뀌었습니다. 유대인의 할례 의식은 세례 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회당은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와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있기 전에는 어떤 기록들이 있었습니까?
누가 태어나서 몇 년을 살다가 죽으니라. 몇 세에 죽으니라. 어떻게 죽었더라. 생각해 보면
인간은 태어났다가 죽는 것.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표현대로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헛되고 헛된 일이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사랑하면 뭘 합니까? 곧 죽는데. 돈을 벌었으면 뭐 합니까? 오늘 죽는데. 예쁜 집을 장만하면 뭐
합니까? 그 집에서 하룻 밤도 자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여러분, 그 동안 많이 배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쓸데 없지 않나요?
여러분, 많이 모아 두셨습니까? 오늘 죽는다면 그 모아 둔 재산들이 나와 아무 상관 없어집니다.
여러분,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했습니까?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 있겠습니까?
▶ 가슴이 터질 만큼 미쳐 버릴 만큼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모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역사적 진실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를 허무 의식에서
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말씀이 부활하심으로 실현되는
사건입니다. 이 소식보다 인류에게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니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벧전1:3-4)

2. 우리는 (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여 날마다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고전15:57)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순간, 모든 소망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품었던 기대와
바람이 무너지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인 그 사람들이 자신들도 죽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하셨습니다.
역전승이었습니다. 선하신 주님이 악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기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겼고,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셨습니다. 진리로 거짓과 맞서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더 이상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라고 인정하자, 제자들은 그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확신의 사람이 됩니다. 환희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마음에는 부활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찹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이지요. 불의를 보고서도 겁을 먹었던 제자들이 이제는 불의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악한 무리를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셨던 바로 그 법정에 이제는
제자들이 서게 됩니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성이 모두 그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위협만 하고서 놓아 보냈다.”(행4:19~21)
이제 제자들은 부활 신앙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모든 사람들을 부활 신앙으로 바라봅니다.

4

저 사람은 부활을 믿는가? 나에게는 부활 신앙이 있는가?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더 이상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권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 초대 교회 성도들은 빌라도를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원수가 생겨도 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부활하게 될 것을
믿기에 아무도 미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의 부활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너무도
명백하여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부활 신앙으로 해석합니다.
불행했던 일들도 부활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죽음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이고, 우리는 그 다음
차례입니다. 이 모든 일을 누가 주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을 누가 살리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패배하는 일이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역전승의 명수입니다. 승리의 하나님입니다.
☞ 여러분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으십니까?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의 피가 나의 죄를 씻어주신 것도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의 약속대로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풍성한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주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동행해주신다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이 나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이 나에게 평안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기쁨을
주신다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분이 승리하신 것처럼 나도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신다는 것도 절대 사실입니다.

[ 기 도 ]
하나님,
자주 넘어지고 실패했던 저희들을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던 날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하나님처럼 따뜻한 사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주님이 주시는 영혼의 평안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5

상처 입고, 자주 넘어졌던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활하게 될 것임을 알려주시고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라도 부활 신앙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부활 신앙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해 주세요.
부활 신앙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해 주세요.
부활 신앙으로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