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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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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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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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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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3월 4일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면…

( 왕상 19: 9 ~ 18 )

영국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1798년, 『옛 선원의 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홀로, 홀로, 내내 홀로
넓고 넓은 바다 위에 홀로!
고통 중에 있는 나의 영혼을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노라.
… 넓고 넓은 바다 위에
이 영혼이 홀로 있네.
너무도 고독하여, 하나님 자신까지도
계시지 않은 듯 하였노라.

사람은 혼자 산다고 해서 고독한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도 더 고독할 수 있습니다.
유머 감각이 많아도 고독할 수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어도 고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Warren G. Harding)은 24시간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백악관이라고 하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집트의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은 1978년 인터뷰에서, 지난 반 년 동안 독방 감금 생활이
그의 생애에 가장 위대했던 기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야말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 Stockdale) 장군은 베트남에서
7년 반 동안 전쟁포로로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내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신 훈련, 각종 계획, 기도 등으로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홀로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중들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융(Jung)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독은 나의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허용할 수 없다고 하는 어떤 견해를 가지는 데서 오는 것이다.”
게리 콜린스(Gary R. Collins)는 “외로움은 우리가 가깝고 의미 있는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슬픔과 고통스러운 고립감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깊은 열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고독했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고독했고, 욥은 재산 잃고 자식 잃고 배우자 떠나고 건강마저 잃는 상실감의
고독에 시달렸습니다. 친구들마저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탕자의 형은 완고함의 고독에
빠졌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사울 왕은 시기심에 다윗을 죽이려고 했고,
양심의 가책과 고통속에서 미쳐버리기까지 했습니다.

☞ 오늘 하나님은 ‘혼자라는 느낌’ 속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한 사람을 보여주십니다.
그가 느낀 외로움에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 받았는지를 통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1.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하나님은 ( 나 )에게 물으신다.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 독선은 고독의 원인이 된다.

2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왕상19:9)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문에는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 보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가인에게 너의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도 가인 자신의 모습을 살피도록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도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열 명의 문둥병 환자가 모두 치료받았는데,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했을 때는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와의 대화 속에서 똑 같은 질문을 두 번 던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 자신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이 컴컴한 동굴에서 왜 밤을 지냈을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걸까? 나는 왜 철저하게 혼자라는 고독감속에서 의욕을
상실한 걸까? 엘리야가 왜 고독감에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낄까요?
먼저, 육체적인 피로 때문입니다.

그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에게 핍박을 받았고, 그들에게 쫓겨 산에서 3년이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얻어서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영적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갈멜산 제일
높은 곳에 제단 둘을 쌓았습니다. 바알 신이 참 신인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인지
가리자고 대결했습니다. 국민들이 둘러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도록 했습니다.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숫자는 850명이나 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엘리야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신 신임을 증명했습니다.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통쾌한 승리입니다. 엘리야는
주저하지 않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알의 제사장 850명을 기손 강에서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기도합니다. 몇 년이나 계속된 가뭄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보고
구름이 몰려오는지 살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몰려
오자 그는 산 꼭대기에서 산 아래 도시까지 달려갔습니다. 다음 날 왕비 이세벨은 심부름꾼을
보내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는 두려움에 도망칩니다. 그리고 유다의 브엘세바로
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 시종은 남겨두고, 자신만 혼자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 길을 더 걷습니다.
그는 이제 지칠 대로 지친 것입니다. 사람들을 탈진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육체적인
피로입니다. 과로는 단순히 몸만 지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고독감을 유발합니다.
두번째 원인은 정신적인 소외감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왕상19:10)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판단될 때, 사람은
누구나 소외감에 빠집니다.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깊은 우울과 무기력감을 경험합니다. 고독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건강을 해칩니다. 삶의 의욕을 빼앗아갑니다. 슬픔에 빠지게
만들고,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인 오던(W. H. Auden)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W. H. Auden)
세번째 원인은 영적인 독선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섬긴다는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살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아담이 혼자 살았을 때
그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셨기 때문에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탯줄을 끊고, 혼자서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날 때도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태어났고, 눈을 뜨지 못하는 아기에게 따뜻한 온기와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 또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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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합니다. 아무리 내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말
사랑받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을까요?

▶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저 태양을 만드시고, 별들과 강들과 꽃들과 동물들도 창조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두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건강도 주시고, 할 일도
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성경도 쓰셨고, 교회도 세우셨고, 목회자도
보내주셨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적이
있을까요?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자가 되셨던 순간이 있습니다.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요16:32)
이것이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엘리야가 왜
이런 고독감에 빠졌습니까? 나만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이 더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 열심이 독선이 된 것입니다. 나 혼자서
경건하게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혼자라는 생각은 자기 연민의 감정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만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독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거짓되고, 나만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독선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고독의 원인입니다. 교만이지요. 엘리야는 자기
중심적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눈에 비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이 더 많지 않을까요? 내가 볼 수 있는 동물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미생물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내가 셀 수 있는 별들보다 내가 셀 수 없는
별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내가 아는 지식보다 내가 모르는 지식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엘리야는 깊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당하는 것 같았고, 나 혼자만 진실한 것
같았습니다. 나만 억울한 일을 겪는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이 언뜻 보기에는 미쳐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감옥에 가야 할 사람들도 많지만, 착하게 살려고 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자에게 물으십니다.

2. 사랑으로 ( 사명 )을 자각할 때 고독감을 극복할 수 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인 시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왕상19:15-16)

나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고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고독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합니다. 양심을 지키고, 신앙을 지킨 경건한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아그립바(Agrippa) 왕과 사도 바울의 대화가 나옵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의 왕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권력과 돈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사도 바울은 죄수 신분입니다. 한 사람은 자유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피고인입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바울이 왕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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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행26:27~29)
대단히 중요한 발언입니다. 모든 사람이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빈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지금 바울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나에게 나타나셔서 나에게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복합니다. 죽어도 순교하는 것이고, 순교해도 천국에 갈 운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으십니까?

이런 믿음이 있어야만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너도 엄마처럼 하나님 믿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 엄마를 봐라. 비록 현실에서는 가난하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다만,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이 스포켄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의 용서,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불쌍한가?
-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도 모를 것 아닌가?
- 죄를 이기는 능력도 받지 못할 것 아닌가?
- 나를 영원토록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고마운 은혜를 모르는 사람처럼 가엾은 영혼이
어디 있는가?

고독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지 잠시 망각할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고독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잠시 잊고, 나 중심적인 생각에 빠질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고독한
감정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고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독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하고 날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6~18)

역경 중에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줄고 지혜와 용기가 생깁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고요한 평정심이 찾아옵니다. 믿음이 강해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발동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4:6-7)

☞ 고독감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엘리야 혼자 남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일을 계속 이어갈 후계자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외로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엘리야는 자기 혼자 이렇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희생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의 순종과 헌신을 대낮처럼 밝혀주실 것입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를
시리아의 왕으로 세워라. 예후에게도 기름을 부어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
무슨 뜻입니까?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겉으로만 보면 인간이 주도해 나가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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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열정이 솟아납니다. 할 일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독할 틈이
없습니다. 자녀가 많은 엄마에게는 한가로이 푸념할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이
고독하지,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고독이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고인 물이 썩지, 흘러가는 물은
썩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그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생명력이
넘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고독에서 벗어납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고독감이
밀려오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명감이 찾아옵니다. 팔을 걷어 부치고 행동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왜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느냐?”

[ 기 도 ]
하나님,
나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서 우리가 외로웠고 고독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순간에 고독이 밀려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생각만 하는 사색가가 되지 않게 하시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소서.
자기 연민의 고독에서 엘리야를 건져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성령의 감동으로 입혀 주소서.
십자가 그 사랑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이 도시에 있는지 살피고 찾아가게 하여 주소서.
부활의 소망을 안겨주고, 주님의 사랑을 그 가슴에 불 지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