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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상을 10% 밝게 하는 방법 (A way to improve self-esteem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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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Date
2018-01-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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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8년 1월 14일

자아상을 10% 밝게 하는 방법。

( 출 4: 10 ~ 17 )

악당들을 물리치고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영웅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배트맨(Batman)에게는 굉장한 체력이 있습니다. 운동을 할 때 20kg짜리 철판 4개를 자신의 몸에다가
고정시키고, 자신의 몸무게(약 95kg)를 합해 총 약 175kg의 무게를 오로지 양손만으로 턱걸이를
연달아 하는 위엄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바주카포를 막는 방탄유리를 주먹으로 부숴버립니다.
원더우먼
(Wonder Woman)은 날아오는 총알을 손목으로 막아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악당들을 모두 물리치시면 어떨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용한 사람들은
약하거나 열등감이 많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혜있는 사람, 권력이
있거나 가문이 훌륭한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자신이
연약함을 알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수퍼 스타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 많고 가난하며 겸손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위대한
일을 하시려고 하실 때, 이들이 낮은 자존감(low self-esteem)과 열등감(complex)으로 인해
부르심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만, 지나친 자기 비하나 열등 의식도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합니다. 모세의 삶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던 그는 40세까지는 자신을 과신했고 교만했습니다.
용기와 자신감이 넘쳤지요. 그러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고 광야로 도망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에 그는 아주 깨져 버렸습니다. 깨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모세의 좋은 면까지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세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열등의식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이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 3장과 4장의 전체 대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가능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선택했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라는 내용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4:10, 4:13)
▶ 자신에 대한 불신과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라는 문제를 놓고, 계속
실망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열등감은 아기 침대에서부터
시작하고 유치원 시절에 성장하여 사춘기 때가 되면 아주 심해집니다. 그리고 70대 80대가 되어서도
열등감을 치유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행복하지 못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나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하고 싶은 꿈, 되고 싶은 이상을 파괴합니다. 인간 관계를 파괴합니다.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 하나님은 모세의 열등감 치료 사례를 통해 우리의 자아상을 밝혀 주십니다. 어떻게 하실까요?

1. 하나님은 모세의 열등감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 동행 )의식을 심어주셨다.
하나님은 모세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감추시거나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잘 볼 수
있도록 드러내셨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그 환부가 잘 보이도록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의 내면세계의 치부를 끌어냈습니다.
▷ 모세에게 있던 열등감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상실감입니다.

2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자,
모세는 당황합니다. 내가 누구라고 감히 그런 큰 일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출3:11) 40세까지의 모세는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히브리 사람으로 태어나 이집트 공주에게 입양되어 바로의 아들로 성장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민족은 애굽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의식도 분명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출2:11-12).
그런데 이튿날 모세가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 “그러자 그 사람은 대들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 모세는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다.”(출2:14)
이집트의 바로 왕으로부터는 쫓기는 살인자입니다. 동족 히브리 사람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집트 왕족입니다. 이 두 가지 신분과 정체성 속에서 모세는 자기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상실합니다.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면서, 미국에서 사는 미국
시민입니다. Korean American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두번째, 자기 불신입니다.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지만, 과연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아마도 속으로 비웃거나, 광신자라고 여길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하면 어찌합니까?”(출4:1)
모세는 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왜냐하면 모세 자신이
아무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족 히브리 사람을 위해서 이집트 사람을 죽였지만,
동족으로부터 칭찬 받지 못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곧 버림 받은 느낌과
배신감으로 남았습니다.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나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줄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관계를 맺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했던 경험 때문에, 아무도 믿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조차도 불신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조차도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세번째, 무기력감입니다.
실패를 거듭 경험하게 되면, 이제 도전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채우는 것이지요. 그림자는 실체가 아닙니다. 실체는 우리
자신이고,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몇 번 부정적인 사건을 겪고 나면, 내 안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깁니다. 이제는 실체가 없어도 그림자의 잔영이 무의식 세계를 지배합니다. 나는 안
돼. 나는 재수 없는 놈이야.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의 무기력함을 알거야. 오늘 시합에서도
결국에는 질 거야. 이기는 사람들은 이기는 습관이 배어 있고, 지는 사람들은 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그리고 그에 합당한 구실과 명분을 찾습니다. 안 되는 쪽으로 결정하고 나서 적당한
구실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출4:10)
모세의 이러한 자기 평가는 정말 사실이었을까요? 스데반 집사님은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그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행7:22)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나는 무기력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열등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생각에서 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인생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 주셨을까요?

3

하나님은 모세에게 ‘동행의식’을 심어줍니다. 지금 80세가 된 모세는 신체적으로도 쇠약해
졌습니다. 심리적으로도 무기력하고 불신이 깊습니다. 용기와 자신감이 없고 상실감이 큽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테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출3:12)
자기 정체성이 흐려진 모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출3:14-15)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죽은 신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창조주입니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체의 주인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분이고,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잘잘못을 따지시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스스로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그 사람입니다. 누가 승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한 편이 된 사람입니다. 누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정복자, 독재자, 부자, 지식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누가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역사상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예수님 뿐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 여러분, 2018년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실패하고 주눅들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못한다고 핑계대며 피하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십니다. 건강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는 그에 필요한 사람도 붙여 주십니다.
재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아이디어도 주시고, 상상력도 주십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의 몸인 이 교회에는 사역팀장들이 더 필요합니다.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줄 교사들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잠재력을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몇 사람을 인도하는 목자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듭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막9:23)
◈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열등감을 털어내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2. 부정적인 자아상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 바른 이해 )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두 번이나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출3:4)
하나님은 왜 모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셨을까요? 모세의 나이가 많아서 청력을 나빠서 못
들을까 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모세(Moses)라는 그 이름은 그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고유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속에서 한 사람의 영혼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로보트가 아닙니다. 로보트는 성격도 똑같습니다. 기능이나
능력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 자 다릅니다.

4

우리가 열등감을 갖는 이유는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경쟁해서 내가 앞서거나
이기면, 나에게는 자신감이나 우월감이 생깁니다.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궐에서
늘 바로 왕과 비교 당하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말은 곧 법이요 질서였습니다. 그의
권력은 신적인 존재처럼 막강했습니다. 또 하나, 모세는 형 아론과 비교 당하며 성장했습니다.
대부분의 동생들은 가정에서 자라면서 형과 비교를 당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형이 힘이 셉니다.
운동을 더 잘 합니다.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실수도 적게 합니다. 그래서 동생들은 형을 이기고
싶어합니다. 특히 형에게 자주 맞으면서 자란 동생들은 더욱 심합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기
형을 싫어하는 동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의식 속에서 성장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창조의식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너를 창조한
자는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나는 너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너는 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다른 어떤 지도자들도
하지 못했던 어마 어마한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너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인식될 것이다. 나는 너를 통해서 성경책 다섯 권도 기록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결국 이것들은 카톨릭과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경전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열등감에 젖어 있던 모세를 이토록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실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모세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던 생각의 방향을 전환해서 하나님께로 쏠리도록
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자아상, 이것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긍정적인 분입니다. 하나님께는 열등감이 없습니다. 부족하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악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며 빛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의 열등감을 치료하는 처방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 상을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고,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다는 확신이 없는데, 내가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하면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과 상상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악할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보다 더 부패하고 썩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에게는 빛이
비춥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빛이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1:9~12)
빛이신 주님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내 안에 있던 어두움이 숨을 곳이 없어집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계속 들려줍니다. 주님의 사랑은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그런
한결 같은 주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안정감을 심어줍니다. 평안한 것이지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알면 알수록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시기와 질투심, 두려운 감정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사람에게는 계절이 가면 갈수록
더욱 인자해집니다. 이해심이 깊어지고, 사랑이 많아집니다. 인자하고 여유롭습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해집니다. 부드럽고 친절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성격이 괴팍하지
않습니다. 공격적이거나 날카롭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처음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세도 성격이 불같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날마다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모세는 그 시대 어느 누구보다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민12:3)
▶ 여러분, 올 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5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볼 때, 가장 큰 발전을 이루고,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1월보다 12월에,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사람됨이 가장 큰 복입니다. 인격과 신앙이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올 해 사업이 대박나서 돈을 많이 벌었어도, 하나님을 닮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녀가 올
해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연봉을 많이 주는 기업에 취직이 되었어도, 신앙 생활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그것은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자아상이 10% 더 밝아지고 긍정적이 되려면, 하나님을 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단순히
천성과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자아상이 아닌 하나님상이야말로 우리의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 열쇠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크 배터슨, 『극복』, 두란노. 2013)
A.W. 토저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낫게 보는 것이… 수 백 가지 작은 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높게 보면 수 만 가지
일시적인 문제에서 해방된다.”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가면서, 자신 안에 있던 열등의식을 치료받았습니다.
열등감이 치료되면서 그는 노예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히브리 민족을 자유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번뿐인 귀한 인생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놀랍고 행복한 인생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에게도 영어를 못한다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생긴 열등감도 있고,
외모가 예쁘지 않아서, 키가 작아서, 운동을 못해서, 돈을 잘 벌지 못해서, 남들과 비교
당하면서 생긴 갖가지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평판은 우리를 더욱 위축시키곤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격려해주며,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성숙한 문화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우리는 욕을 얻어먹거나 남을
비방함으로 상처를 주고 받곤 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열등감이나 비교 의식, 상처로 얼룩져 있는 저희들은
심지어 교회 사역에서조차도 앞장서서 나서지 못하고 늘 못한다고 거부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서도,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그 말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올 해에는 사람들이 칭찬을 하든, 비방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에서 쓰임 받게 하여 주소서.
봉사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조용히 사랑하고, 기도하며, 섬기게 하여 주소서.
한 해가 저물어갈 때,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던 추억들을 감사하게 하여 주소서.
열등감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했던 모세처럼
우리들도 늘 동행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잡고 밝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