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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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How shall we live our la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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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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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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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2017. 12. 31.

마지막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약 4: 13 ~ 17 )

의사가 와서 환자를 진찰하고는 오늘 밤 12시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의학적 판단을 내렸을 때,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 할까요? 의사가 알리는 경우, 가족이 직접 환자에게 말하는 경우, 목사님께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 환자에게 알리지 말자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환자에게 알려주었을 경우, 환자들의 반응도 제 각각입니다. “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죽긴 왜 죽습니까?
의사의 오진입니다.” 그렇게 거부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출생했던 날이 있듯이, 죽을
날도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처럼 소중한 지혜는 없을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러시아의 작가. 작품: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는 28세 때, 국가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 날, 그는 사형받기 위해 기둥에 묶여
있었습니다. 시계를 쳐다보니 사형집행 시간까지는 정확히 5분이 남았습니다. 이 천금 같은 시간에
그는 마지막 5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합니다. 2분은 자신을 찾아준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2분은 자신이 살아온 28년동안의 삶을 돌아보는데 쓰기로, 그리고
마지막 1분은 아 아름다운 세상, 대자연을 둘러보는 데 사용하기로 결심합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이제 3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생각에 ‘나는 3분 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 28년 동안의 삶이 모두 후회스럽고
뉘우쳐지는 일들로 가득하다고 느낍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찔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형리가 총에 탄환을 장착하는 소리가 ‘철커덕’ 하면서 들려옵니다.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면서 온 몸을 가눌 수 없이 떨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저 멀리에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옵니다. 황제의 칙령이 내렸으니, 사형을
집행하지 말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라는 내용을 전달합니다. 결국 그는 총살형을 면하고,
시베리아로 가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비록 유배지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5분을 날마다 생각하면서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는 삶을 살았습니다. <백치> 등의 작품에 보면,
사형 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이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 각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은 내가 죽어야 할 시간이 언제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생각을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기도해야 합니다.
☞ 인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생이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 가지 자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
둘째, 성령님의 역사. 셋째, 하나님의 사람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죽음 후에 세계가 실재하는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오늘 부르실 지 모른다 생각하고, ( 겸손 )하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해 줄 누군가를 찾습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기에게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다면,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기에게 전달됩니다. 인간의 불안감은 많은 부분이 무지와 불신에서 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볼까요?
당신은 당신 인생이 당신의 뜻대로 됩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시 자신의



2

뜻대로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이러한 무지와 불신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이사야 58:9~11)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요청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치료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영원히 살아계시며,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비록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나,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함께 있다.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회개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여 준다.”(이사야 57:15)
우리는 ‘내년에 이것도 하고, 저것은 이렇게 해야지~’라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계획없이
사는 것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은혜와 허락하심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안개가 머물렀던 흔적을 우리가 찾지 못하듯이, 한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지워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자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오늘 하루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내가 기대했던 대로 된 것이 있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하나님께서 용납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는
우리가 했어도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능력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든, 심장마비든, 화재사고든, 우리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망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상처를 주었던 사람도 죽을 것입니다. 상처를 받았던 사람도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상처받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상처 받기 이전부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내가 어떻게 감사하며 살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배를
기쁘게 드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지요.
주일이 되면 세상에서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죽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고 불평하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 요한 웨슬리 목사님께 어느 청년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만약에 오늘 밤 12시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부르신다면 목사님은, 지금부터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목사님은 조용히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할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평소에도 늘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오늘을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내가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사람에게 전화합니다. 평범한 내용을 전할 뿐입니다.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오해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지요. 오늘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전화나 카톡을 해야 할 사람 목록을 적으면서도, 늘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사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잠자리에 들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내가



3

만났던 사람들, 사건들을 하나님께 있었던 그대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잠 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온유하심, 하나님의 인자하심, 긍휼과 자비심을 품고 잠이 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릴 때마다 저는 예수님의 성품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나는 언제쯤 주님을 조금이라도 닮아서 겸손해질까?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와
사시고, 나는 주님 안에 거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인간 관계는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죄인이고, 이기적이며, 무지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무지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해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실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해주신 주님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미워하지 않고, 긍휼하게 여기게 해달라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안고 살지 않고, 주님께 받은 그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 주님은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요한복음 15:9)

2. 마지막 건강, 돈, 재능,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 선한 일 )을 행하라.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약4:17)
사람들로부터 행복과 감사를 앗아가는 요인 중에 <부정적인 말과 평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범하는 잘못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 욕하는 것입니다. 가장 악하고 가치 없는 일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실천하지
못합니다. 또한 나는 남 욕하지 않고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고 싶어도, 사람들은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를 전혀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람들이 살지
않는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서, 가급적 한국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한 고립은
외로울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않았던 조롱을 받았거나, 비난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미즈시마 히로코>는 『나는 절대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쁘띠
트라우마”(Beauty Trauma)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남들로부터 받았던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뜻합니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면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고,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연예인들이나 정치가, 스포츠
스타 등 유명한 사람들은 SNS, 인터넷 등을 통해서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당하고 어이 없는 비난을 들었을 때는 그 말이 우리 마음에 내면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국의 심리 치료사 <마리사 피어>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면
그것을 당신에게 건네려는 어떤 물건으로 생각하라. 그 물건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 물건은 그냥
상대방의 손에 남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그 부정적인 사람의 말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내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당장 내쫓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 병균이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건강을 돌보아야 합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과로하지 않는 것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입니다. 또한 비타민을 먹고, 꿀도 마시면 더욱 좋겠지요. 긍적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선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서 실컷 웃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의 고난과 은혜를 생각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과 싸울 때,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며칠 전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2017년 12월27일. 수요일)
『저희 교인 중에 암에 걸린 어떤 분이 글 한 편을 썼습니다. “암이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암은 사랑을 병들게 할 수 없다. 희망을 깨뜨릴 수 없다. 암은 믿음을 녹슬게 할 수 없다.



4

평화를 앗아갈 수 없다. 자존감을 파괴할 수 없다. 우정을 죽일 수 없으며, 추억을 지워 버릴 수도 없다.
용기를 없앨 수 없고, 영혼을 침범할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을 축소시킬 수 없다. 성령의 불을 끌 수 없다. 암은
부활의 능력을 약화시킬 능력이 절대 없다.”
이런 글은 시련이 우리에게 유익이 됨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 성도는 암이라는 큰 병과 싸우고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고난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고통만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유익을 적극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하나님 사랑의 증거임을 믿는 적극적인
인내가 우리의 몸과 영혼에 힘과 용기를 줍니다. 만약 죄로 인한 고난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고난을 통해 훈련을 잘 받으면, 남은 인생에 능력과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후에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김상복.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악은 악을 낳습니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을 만듭니다. 믿음은 또
다른 믿음을 잉태합니다. 소망은 다른 사람에게도 소망을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용서는 막혔던 축복의 통로를 뚫어줍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짜증내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쓰며 살지 말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오해와 이해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우리는 남을
욕하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란 내가
선하다고 여기는 것이 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여기는 일이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선합니다.
(사례)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이라는 지방에 가게 됩니다. 한 과부가 외아들과 함께 함께 나뭇가지를 줍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까, 과부는 대답합니다. 자기 집에 식량에 다 떨어져서
이제 마지막 남은 가루와 약간의 기름으로 마지막 빵을 만들어 먹고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 마지막 식량을 자기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과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 마지막 한 끼 식량을 나와 아들이 먹고 죽으나,
못 먹고 죽으나 죽는 것은 같다. 그럴 바에야 하나님의 종인 저 선지자에게 대접하자. 죽기 전에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과부는 마지막 식량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가정에 기름과
밀가루가 끊이지 않고 그 흉년 기간 내내 먹을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시간. 남아 있는 건강을 가지고,
남이 있는 음식 재료를 가지고, 남아 있는 요리 솜씨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 여러분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 또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 주라고 하십시오.”(딤전 6:17-18)

[ 기 도 ]

하나님,
올 해 365일 가운데 오늘 마지막 날을 보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하나님의 크신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5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을 자주 하며 살았던 잘못을 회개합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했고
사랑하지 못해서 미워했으며
용서하지 못해서 부정적인 감정에 끌려 다녔던 날들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녀임을 깨닫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찬양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내 힘만으로 살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오늘이 올 해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 날도 반드시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사랑하며, 기도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