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편지

목회자의 편지

Home   |   교회 소식   |   목회자의 편지

예수님이 오신 이유

Author
admin1
Date
2017-12-27 14:21
Views
266
목회자의 편지(705) 2017년 12월 24일
예수님이 오신 이유

인간 관계에서 소통처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서로에게 마음이 닫히면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도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 문을 열어야 소통이 가능합니다. 상처와 오해는 우리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듭니다. 또 하나,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과 소통이 이루
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만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의인에게 마음 문을 열지 못합니다. 성공한 친구가 실패한 친구를 만나서 위로를 해주고
싶어도 실패한 친구의 입장에서는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
들이 가서 아무리 위로를 해주어도, 사실 그 환자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다리를 하나 잃은 환자가
입원실을 옮겼는데, 그 병실에서 다리를 두 개 잃은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 환자를 통해서 위로
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성도님이 예배 시간에 5분 늦게 들어왔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해서 몸을 숙이고, 조용히 빈자리
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5분 후 친한 집사님이 오더랍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랍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고약합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위로
하려고 하니까요. 부부 간에 싸움이 생기더라도 나를 의인의 위치에 놓고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면
대화는 막힙니다. 절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도 죄에 빠진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죄인의 자리까지 낮아지지 않고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것도 터미네이터처럼 우람한 체격의 강한 모습이 아니라, 아무 힘없는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사형수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평소에도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듣고 사셨지만, 죽을 때의 신분은 십자가 죄수의 신분으로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너무나 고통스런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을 그 고통스런 십자가에 담아 우리에게 전달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가
그 십자가 만큼이나 무겁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 고통보다 더 뜨겁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자 하신 것이지요. 아기 예수의 태어난 장소는 대학병원 신생아실 VIP Room이 아니었습니다.
소나 말이 음식통으로 삼는 냄새 나는 구유에 아기를 눕혔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헤롯 왕이 아기를
찾았고, 찾으면 죽이려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고난이 비켜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도 악한 자들의 핍박과 방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이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름다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장
하여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며, 구원 사역을 펼칠 때도,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
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세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