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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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아둘람 공동체(Adullam Community of David)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10-08 11:50
조회
153
설교 원고(교회창립 41주년) 2017. 10. 8.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

삼상 22 1 ~ 5


예수님은 죄를 싫어하고, 죄가 없는 분이셨지만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인생 끝은 십자가
죄수 신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누구나 손가락질하고 상종하지 않던 사람들, 즉
세리와 창녀와 정신병자와 문둥병자들과 장애인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만져주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소 국가였고, 로마는 이 사람들을 군사력으로
누르고 세금과 노동력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국민들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거저 은혜를 주시고, 이런 은혜를 깨닫고
용서와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전쟁터에서 싸웠지만, 전쟁 영웅의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울 왕의 정치적 숙적이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이 나라 저 나라, 광야와 숲속과 동굴 등으로 자기 몸을 숨기며 도망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분 문제가
있거나, 불법 이민자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릅니까? 그런데 다윗은 국가 충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요? 이런 다윗에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울 왕으로부터 감시와 사찰을 받던 가족들이 모였고,
압제를 받던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원통한 일을 겪은 사람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두 다윗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남자만 400명이니, 그 가족까지 합하면 약 천 명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 것입니다. 커다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착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자기를 이해해주고,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도와주는 천사 같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기적이거나 아프거나 중독에 빠졌거나 이상한 사람들은 없을까요?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편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1:26~ 28)

◈ 오늘은 이 도시 스포켄에 한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신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을 둘러볼까요?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이나 서민들, 영어를 잘
못하는 노인들과 이중문화가정을 이룬 분들입니다. 물론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의사, 교수, 변호사, 판검사, 갑부, 이런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윗이 속했던 아둘람(Adullam) 공동체를 보여주시면서,
우리가 어떤 교회,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 병원 )이다.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주라.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삼상22:2)

하나님은 다윗이 어린 시절에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제사장을 통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종이 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은 험난했습니다. 하루 하루가 죽을 것 같은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울 왕이 그를 잡으려고 추적해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정처없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돈이 넉넉할까요? 싸움을 잘 하는 보디가드가 옆에 있을까요? 그에겐 아무도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어서,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찾아가서 때가 지난 떡, 제사하고 남은 진설병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도망을 다니다 보니 적국인 블레셋 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육체적으로도 지쳤고, 신앙적으로도 영이 밝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판단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데로 위기를 벗어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블레셋은 전에 다윗이 어린 시절, 그들의 영웅이었던 골리앗을 죽인 나라입니다. 원수의 나라입니다. 그 적국에 도망가면 더 이상 사울 왕이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곳에서 의심을 받게 됩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자, 다윗은 미친 연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삼상21:13)

사람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이런 연기까지 하면서 다윗은 서러움과 눈물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보내서 다윗이 이방 나라에 망명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심을 알리셨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지내다가 예루살렘 남서쪽 26 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아둘람 굴에 피해있었습니다.
사울이 정보국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전국에 다윗이 있는 곳을 알려고 해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사람들은 어찌 알았는지,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로 찾아왔습니다.

다윗에게 몰려온 사람들은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상처받고 억울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다윗에게 찾아온 이유도 자신의 이런 억울함을 다윗이라면 알아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도 이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전문지식과 실력을 쌓아 주류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이들이 다윗을 찾아온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일찌감치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소년 다윗이 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때부터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을 직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사용하시는 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더욱 다윗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처음 갔더니 교인들이 다 환하게 웃고 있어서 참 좋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처음 갔더니 교인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더라고 하면서 호감을 표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처음 갔더니 사회에서 꽤 높은 공직에 계신 분이 주차장에서 주차봉사를 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과연 이런 분들만 계실까요? 성자 같은 분들만 계시고, 깨끗하고 밝고 건강한 분들만 교회를 다닐까요? 예수님께 나왔던 사람들 중에는 건강한 사람도 있었지만 아프고 병든 사람이 많았습니다. 문제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상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개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기도만 하는 수도원이 아니라 말 많고 시끄러운 시장에 가깝지 않을까요? 겸손한 사람들도 있지만 교만한 사람도 많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베풀기 좋아하는 이타적인 분들도 있지만,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은 곳 아닙니까?
조용하고 차분한 분들도 있지만, 혈기를 부리고 소리를 잘 지르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성경을 많이 읽고 경건한 분들도 있지만, 술 담배 카지노 노름에 중독된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도시 스포켄에 약 50년 전부터 한국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오자 이들을 위해서 한인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만 모여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도 장로 직분 받고, 대접받게 하라고 직분을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기적인 사람, 교만한 사람, 건방진 사람, 중독에 걸린 사람, 빚을 지고 갚지 않는 사람, 남 험담하며 다니는 사람, 자기가 받은 상처만을 생각하고 자신이 남들에게 준 상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부르시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환자들이 모인 병원이기 때문입니다. 별의 별 상처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로 공동체를 이루라고 하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그 사람의 상처가 낫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왜입니까?
나도 상처받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상처를 잘 받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치유받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다가 자녀가 다리에 상처가 생기면 어떻게 해줍니까? 약을 사다가 그 상처에 발라줍니다. 그 상처가 다 낫기까지 도와줍니다.

▶ 목장 모임은 왜 가질까요?

세상살이 하면서 우리는 자주 상처를 입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서 속상하거나 억울한 일도 겪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위로받을 만한 여행도 못합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병을 키울 때도 있습니다.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분은 한국에 가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 투성이 외국인들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트라우마가 많습니다. 외롭습니다. 가난합니다. 소외될 때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인종차별)을 느끼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사랑해 주십니다. 주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속이지 않으시고 거짓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아파도 변하지 않고, 우리가 아무리 늙고 보잘 것 없어도 한결같습니다. ♡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뜻을 전하시면서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주는 공동체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2. 우리는 가족임을 잊지 말라. 내 탓임을 ( 인정 )하고, 서로 용서하라.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였다. 다윗이 산성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다윗의 부모는 모압 왕과 함께 살았다.”(삼상22:4)

이제 다윗은 혈혈단신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가 도망 다니면서 들판에서도 자고, 강가에서도 잘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남자만 400여명, 그 가족까지 합하면 약 1,000명에 가까운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이제 다윗은 이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잡니다.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다윗의 부모는 다윗이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모압 왕에게 부탁합니다.

우리도 그럴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할 부모님은 한국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님을 몇 년 동안 뵙지 못한 채 살아갈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 식구들은 일주일마다 만납니다.
어떤 분은 새벽마다 만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만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누가 식구입니까? 누가 더 가까운 가족입니까? 우리는 피가 섞인 가족만 가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피가 섞인 가족보다 뜻을 같이 하는 제자들이 오히려 더 가까운 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영적인 가족들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했고, 우리도 믿으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전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은 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3:33-35)

우리는 교회에서 만나 서로를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부를 때도 있습니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이런 호칭은 우리에게 주신 역할일 뿐입니다. 신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역할은 잠시 뿐입니다. 시애틀에서 은퇴하신 어느 목사님께서 이제 자신은 평신도로 돌아갔으니 한 성도로서 기쁘게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목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옛날에 목사 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목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전직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우리는 언제든지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공동체 중에는 눈에 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훗날 다윗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수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셉 밧세벳>. “다윗이 거느린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인데, 그는 세 용사의 우두머리이다. 그는 팔백 명과 싸워서, 그들을 한꺼번에 쳐죽인 사람이다.”(삼하23:8) <브나야>. “여호야다의 아들인 브나야는 갑스엘 출신으로, 공적을 많이 세운 용사였다. 바로 그가 사자처럼 기운이 센 모압의 장수 아리엘의 아들 둘을 쳐죽였고, 또 눈이 내리는 어느 날, 구덩이에 내려가서, 거기에 빠진 사자를 때려 죽였다.”(삼하23:20)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싸운 용사들이 3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충신 중의 충신인 <우리아>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윗과 끈끈한 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제사장 <아비아달>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아히멜렉은 배고픈 다윗에게 떡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칼을 그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울 왕은 화가 나서 아히멜렉 제사장 뿐만 아니라, 제사장 85명을 칼로 집단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놉 땅에 사는 남녀와 어린이들과 소, 나귀, 양까지 모두 칼로 진멸했습니다. 이런 처참한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가 바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었습니다. 그의 심정이 얼마나 괴롭고 원통하겠습니까?

아비아달은 거기서 피신하여 다윗에게 도망쳤습니다. 그가 그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윗에게 모두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에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다. 그 날 내가 에돔 사람 도엑을 거기에서 보고서, 그가 틀림없이 사울에게 고자질하겠다는 것을 그 때에 이미 짐작하였소. 제사장의 집안이 몰살당한 것은,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하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지냅시다. 이제 나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기도 하니,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삼상22:22-23)

다윗은 아비아달의 부모님과 그 고향 사람들을 모두 잃은 아비아달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그 슬픔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사울 왕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왜 하나님은 허물 많은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셨는지…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겪던지, 나에게 잘못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관계란 한 쪽만의 잘못인 경우도 있지만, 서로 조금씩 이해가 부족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입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상대방 처지가 어떤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실 것입니다.

☞ 하나님은 왜 다윗이 이렇게 10년 동안이나 도망자 신세로 다니면서 고생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이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지를 깨닫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별의 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통해서
장차 왕이 된다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성실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그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 비전,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국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로운 사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왕국이 되도록 다윗은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교회에 지난 4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아픔을 허락하셨는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모든 아픔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과 욕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아둘람 굴은 천 여명이 되는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장소였습니다. 상상해보세요!
화장실이 넉넉했을까요? 부엌과 취사 시설이 좋았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창립 후 20여 년 동안은 미국교회를 빌어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낡지만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큰 건물을 지어 놓고, 은행 빚에 시달리는 교회도 많은데, 우리는 빚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잘 참으면 하나님께서 그 장소가 바로 축복의 장소였음을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아둘람 공동체는 축복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며,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줄 때, 아둘람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먼 훗날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참고 인내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 여러분,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는 생사고락을 함께 할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가족인 서로 싸우긴 하지만, 상대방의 부족함을 밖에 나가서 험담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내 가족을 보호해야지, 험담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하십니까?



3.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라. 그러면 고난조차 ( 축복 )이 된다.



다윗은 이 공동체를 이끌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신 것처럼, 다윗은 상처로 얼룩진 이 사람을 섬깁니다. 다윗이 이렇게 섬기자 하나님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붙여주십니다. 결국 한 국가를 그에게 맡기십니다.

우리가 서리 집사일 때 섬기는 일을 잘 하면, 하나님은 더 큰 사역을 맡기십니다. 섬기는 사역은 힘이 들고, 때로운 섭섭한 일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아십니다. 우리가 잘 참고 견딘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훗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워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약1:12)

☞ 여러분에게 요즘 고난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으로 잘 참고 견디셔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은 이 교회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충성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 기 도 ]

하나님,
1976년 10월, 미국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몇 몇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한인교회를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영어가 서툰 저희들에게 한국 말로 찬양을 드리고
한국 말로 된 설교를 듣게 하시고,
또한 자체 건물을 소유하게 만드셔서, 냄새가 강한 한국 음식도 맘껏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신 목적을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그 상처를 치유받고, 서로 용납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아둘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회가 천국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에게 비난과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우리가 가족임을 알려주심도 감사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찾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