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주일 설교 말씀

Home   |   설교 말씀   |   주일 설교 말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라(Bring a person with you)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10-01 11:52
조회
169
설교 원고 2017. 10. 1.
한 사람을 데리고 오라

본문 / 막 2장 1 ~ 12절


내가 왜 세상에 살아야 하는지,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내가 스포켄에
있어야 하는 이유? 주어진 삶에 충실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성취해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일과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신
주님은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았던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님을 만나자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중요한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라고 하셨습니다.


『불평형 인격(Complain form personality)』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욕심이 많고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불평하는 것이 인격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한 뼘이 있으면 두 뼘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열을 가지면 스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 사람을 만나면 이것이 불만이고 저 사람을
만나면 저것이 불만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에 살아도 불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물질적인 환경이 그 사람의 중심과 인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난할 때 악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면 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무식할 때 잘못하던
사람이 지식이 많아졌다고 좋은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서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했습니다. 전도하신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한지,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치유의 기적으로 나타났고, 용서의 체험으로 나타났습니다. 문둥병자, 눈 먼 자,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 귀신들렸던 자, 삭개오처럼 소외되어 고독했던 자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인했습니다.

▶ 여러분은 어떤가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나를 생명처럼
사랑하시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인생은
누구나 방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살아가다가
절망을 만납니다.

◈ 오늘 본문에는 중풍병을 만나 삶의 의미도 잃어버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 존재 가치조차
상실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몸이 마비되어 자유롭게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환자는 몸이
아프다는 것도 고통이지만 자기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고통입니다. 그는 자기자신이 귀찮은 존재요,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끝나갈 때 그의 모습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친구 네 명의 손에 들려서 주님 앞에 나왔던 그는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나갑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 안에 있던 죄책감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는, 주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 하나님께서 왜 스포켄에 사는 우리들에게 오늘 이 말씀을 하실까요?


1. 너도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데리고 ( 교회 )에 나오라



주님, 왜 제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한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단12:3)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까지는 동의하지만 왜 하필이면 아픈 사람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십니까? 건강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사랑하십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사랑하십니다.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목말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상처입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고침을 받아야 할 환자요, 용서가 절실하게 필요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져서 은혜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젊고
건강할 때 이런 진리를 깨닫고 주님께 헌신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복음성가 중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또한 상처입은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상처를 보면서 자기
자신의 허물을 깨달은 사람은 진정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집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돌아가셨다고 외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을 들어서 그를 쳐 죽입니다. 스데반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옵시오.”(행7:60)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고침받아야 할 환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환자에게라야 필요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해 봅시다. 스데반이 환자입니까, 아니면
돌을 들어 치는 사람들이 환자입니까? 영적으로 고침받아야 할 환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고침받아야
할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영혼이 병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스포켄을 살다 간 많은 분들이 떠나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스포켄 사람들은 다 좋은데, 다른
사람 얘기, 다른 사람 비방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 안에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데반처럼 비판받고, 돌에 맞으면서도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기가 쉽습니다.

♡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았습니까?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 대신 주님께서 채찍과 부끄러움을
다 당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작은 잘못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씻음받은 사람은 진정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치유입니다. 구원입니다. 회복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내가 너를 십자가에서 용서했다는 사실을 믿느냐?”

▷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제 남은 것은 나와 같은 아픈 환자를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친구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용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치유입니다.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주님은 스포켄에 사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스포켄에는 아직도 영혼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을 내 앞에 데리고 나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가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성령께서도 우리를 주 앞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받으십시오.”(새번역성경)




2. 너도 ( 믿음 )으로 기적을 체험하라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풍병자는 친구들 손에 의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왜 이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나왔을까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면
이 친구의 병이 고침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믿음은 절망을 이기는 힘입니다. 믿음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입니다. 연약한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 연약한 의지를 이기고,
내 자존심을 이길 수 있습니까?

▶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에서 직면하는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주님은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붕에서 내려오는 한 환자를 봅니다.
얼마나 치유받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으면 지붕을 뜯어서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상을 달아
내리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있는 한 가지를 주목해서 보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5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날처럼 휠체어가 있었습니까? 엠블런스를 불렀습니까? 911에 전화해서 데리고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침상에 누인 채로 적어도 네 사람이 들어서 옮긴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벅찬
환자수송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주님 앞에 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은 만나고 싶지만 사람들 만나기가 싫어서 교회 안 나간다.’
신체적 질병도 장애물이지만 사람들이 더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걸림돌이 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꼴보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심어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를 싫어하기 때문에 겪는 마음의 고통은
누구로부터 온 것입니까?

상대방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혹시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마음이 꼭 남편 때문에 생긴 것입니까? 혹시 남편을 향한 내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얻은 인기 때문에도
싫었지만,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이 미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금하고, 구제하고, 금식하는
자신들의 경건을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라고 하는 말씀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경건과 종교생활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내 자신 안에 있는, 높임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속에는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봉하는 계명이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29:13)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까다로운 사람에게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내 맘에 맞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내 마음과 잘 맞지
않는 사람과도 화평하라는 것입니다. ○“하인으로 있는 여러분, 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량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벧전2:18-19) 예수님은 욕을 들으셨지만 맞대응해서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받으셨지만
상대방에게 두고 보자고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병든 사람을 일으킵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약5:15)

☞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맞서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조직 속에서 내 혼자의 정직으로 버틸 수 있습니까? 사회적 흐름을 거부하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쉽습니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길 수 있습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세상이 타락해가는 가운데서 믿음으로 산 위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공직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음으로 주 앞에 나오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 요즘 여러분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나아오라. 믿음으로 문제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라. 기적을
체험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요일5:4-5)




3. 너도 존재의 ( 가치 )를 발견하라



몸이 아픈 사람은 자기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학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쓸모없게 만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귀신들린 여자도
예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의 딸이라는 선포를 들었습니다. 38년 동안 연못가에서 죽치고
앉아있기만 했던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앞을 보지 못하던 한 남자는 자기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었습니다(요한복음9장).

우리는 내가 공부를 잘하면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못하면 가치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면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건강을 잃으면 가치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생각일까요?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까요?

내가 꼭 공부를 많이 해야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까? 내가 꼭 돈을 많이 벌어야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까? 내가 남을 구제하고, 자선행위를 많이 해야만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까? 높은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치있을까요? 건강하고 유능해야만 합니까? 도대체 나 자신이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내 진정한 가치는 이 세상에서 평가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가치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만이
평가하십니다. 내 존재가치는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분이 나를 평가하십니다.
우리가 전에는 죄를 지어, 죄의 노예와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노예와 같이 자유를 잃었던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지불하신 댓가는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명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큼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사선을 넘어서>라는 유명한 책을 쓴 사람이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 갇혀있었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죽임을 당했고, 자녀까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마저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진 이 처참한
비극을 보면서 그는 너무나도 힘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의미요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최악의
고통을 겪는다해도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고통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단순히 힘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고통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모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이유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로
승리를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힘들어도 의미가 있습니다. 순교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이유도 예수님께서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 영생의 의미를 알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례) 조형미술을 하는 권길중박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미국에 이민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한 결과 세계 100대 조형 건축가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젊은 나이에
식도암에 걸렸습니다.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코로 호스를 끼워 겨우 죽 같은 것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의사들도 이제 살 소망은 없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한 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과연 이렇게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 또 자기 명예를 위해서 살았지, 하나님을 위해서는 살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누가 중국 연변 과학기술대학 김진경 총장의 설교테이프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누군가 이 대학에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실려있었습니다. 그는 이 내용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 ‘하나님, 제가 이것을 진작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제 죽어가는 몸이 되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기도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자신을 일으켜 앉혀달라고 하고, 호스도 빼고 죽을 먹었습니다. 며칠 후에는
의사들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례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그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몇 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큼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죄악으로 쓸모없는 저희를 십자가에서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중풍병자를 믿음으로 데리고 나온 친구들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요즘 우리가 직면한 어려운 문제를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우리들도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시련과 역경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전도대상자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초청장(Invitation Card)를 보내고자 합니다.
초청장을 받은 그 분의 마음을
주님께서 움직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