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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What kind of people should we become?)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09-24 11:47
조회
581
(설교원고) 2017년 9월 24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

( 마 9: 9 ~ 13 )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목적 이전에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곧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뜻은 이제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으로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이유는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고, 예뻐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를 고민할 때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죄인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이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례)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재주가 많았고, 자신의 판단력과 지식이 뛰어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도 당연히 훌륭하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가 않았습니다. 부부 갈등이 심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세 번이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마지막 결혼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이나 거듭된 실패를 통하여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됨이 그렇게 중요한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돈이 있는 사람과도 결혼해 보았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과도 살아봤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과도 결혼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세상에 그 누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사람들끼리, 죄인들끼리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돈이 들어왔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겠습니까? 학위를 받았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변하겠습니까? 15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45평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겠습니까? 나이가 들면 사람이 변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아는 것이 인간성의 출발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이 좋은 인격의 첫걸음입니다. 나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내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켜주십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 우리는 미래의 변화될 나를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마11:29)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
목적이고 걸어갈 방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나님은 어떤 마음과 어떤 성격을 지니신 분일까?
하나님을 우리 인류에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똑같이 닮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인격만은 닮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마5:45-46)고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1.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자요, 의인이 아니라 ( 죄인 )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마9:12)

예수님은 지금 길을 가시다가 세관 앞에서 마태라는 남자를 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는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세리와 창녀는 누구나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거룩한 의인인 바리새인들은 그들과는 아예 접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일반 사람들과 접촉하기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을 죄인으로 취급해서 사회로부터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음식도 잡수시고, 웃으면서 이야기도 나누셨습니다.

☞ 예수님은 왜 이러셨을까요?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장소인 성전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거룩한 직업, 성경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그들을 죄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누구나 손가락질 하는 직업, 세리와는 지금 어울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세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세리 마태를 부르신 장소는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옷을 입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는 세관에서 일하다가 부름 받았습니다. 가장 속된 장소, 속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죄인 세리를 부르신 것이지요. 더구나 그를 제자로, 열 두 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은 수군댑니다. 왜 하필이면 저런 죄인을 예수님은 제자로 삼으실까? 비난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세리 마태는 잔치를 벌입니다. 세관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세리들을 다 불러놓고,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감격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창녀 중에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셨습니다. 세리 중에 마태를 사랑하셨습니다. 삭개오를 사랑하셨습니다.
문둥병자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이들을 죄인이라고 취급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환자였습니다. 환자는 자신을 치료해줄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환자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몸도 아픕니다. 인간관계도 상처 투성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길 사람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은 환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스스로가 아픈 환자임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께 나를 치료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예뻐서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람됨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경제력이나 외모를 따지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나왔는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건강한 사람입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는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은 늘 비실비실해? 저 사람은 아프다는 말만 해!
듣기 싫어~.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아파 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본인이 실패하고, 본인이 암에 걸리고, 본인의 가정이 무너질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치료하실 수 있는 진정한 의사입니다. 세상의 의사는 치료를 돕는 것뿐이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 인터넷(Facebook)에서 어느 외과의사의 간증이 소개되었습니다.
『 제가 Facebook을 통해서 알게 된 Dr. Kim이란 분이 몇 주 전에 겪었던 일을 이렇게 간증으로 보내왔습니다. "나는 지난 9월 3일 수술 중에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물론 수술 전에 수술이 쉽지 않다는 점은 예상했으나 환자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환자분의 폐 상태가 워낙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어질 경우 심각한 심폐기능의 문제점으로 수술 중 혹은 수술 직후, 사망 가능성이 5~10% 가량 될 수 있다는 특별 수술 동의서를 받기는 했지만... 집도 의사로서 인공뼈를 성공적으로 채워 넣고
장시간의 수술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수술실 옆의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얼마 되지 않아 수술방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오전 9시 반에 시작한 수술이 이미 오후 3시가 넘었고, 그 때까지 출혈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나는 수술실에서 잠시 나오자 마자 목사님과 지인분들께 기도 요청 메세지를 보내던 차였다.

기도로 돕겠다는 메세지가 속속 도착할 무렵... 함께 수술을 집도한 후배 fellow선생(전문의로서 subspecial course를 위해 2년간의 집중 코스로 training받는 의사를 말함. 대학 병원의 전임 전문의 또는 임상 조교수에 해당함)으로 부터 응급 call이 왔다. "과장님, 피가 멈추질 않습니다. 피가 계속 펑펑 올라와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할 수가 없고, 신경막을 꿰매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과장님을 다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내가 다시 들어가서 보지..." (대게 이런 경우 대학병원에선 집도의가 소리 소리 지르며 야단을 친다능...^_^) 나는 다시 손을 닦고 조용히 수술실에 올라섰다. 왼 손에는 suction tube 를 잡고 우측 손으로 bayonet forceps 을 들고 가볍게 지혈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으나 내가 들어간 시각을 기점으로, 채 1-2 분도 되지 않아 직경 50 cm 가량의 수술 시야에서
걷잡을 수 없었던 출혈은, 마치 무섭게 파도가 치던 바닷가의 풍랑이 어느새 잠잠해짐과 같이, 순식간에
해결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나와 함께 수술을 집도한 후배 의사 선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형님! 근데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봐요?" / "그래?..." / "네~ 어제 있잖아요~ 형이 수술방에 다시 들어와서요~ 그 후에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니 형이 들어오자마자
어쩜 그렇게 피가 순식간에 멎어요? 그때까지 나온 피가 수천cc 이고, 원래 그 정도 피나면 피가 물처럼 되어 지혈 안되잖아요! 근데 형도 알지만 형이 별로 한 것도 없는데(사실 그렇다.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능...^_^) 그냥 피가 멎어버리잖아요!...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같았는데... 완전 놀랐어요.
형이 수술 시작할 때 기도하자고 했잖아요~..."

그랬었다. 나는 수많은 환자들을 수술하면서 수술 시야에서 벌어지는 온갖 돌발 상황과 지혈이 되지 않는 대량출혈에 익숙한 의사였지만... 나는 결코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사건의 결말은 손놀림 좋은 의사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환자가 그렇게 피가 많이 난 것도 예상할 수 없었고, 그렇게 잡히지 않던 출혈이 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해결 되어버린 것도 그렇고... 12시간에 가까운 수술을 받고 많은 출혈과 지혈에도 그렇게 멀쩡하신 환자분도 그렇고... 나는 후배에게 웃으며 여유있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암~ 그렇고 말고. 이제부터 너두 예수님 믿어라. 아, 그리고 앞으로 내 수술 들어오고 싶으면 항상 기도하는 것 잊지 말고~" "네, 알았습니다. 형님!" 그렇다. 그것은 나의 등장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도로 인한 하나님의 등장이었다. 할렐루야~~.』




2.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말라. 나와 똑같은 죄인으로 여기고 ( 긍휼히 ) 여기라.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9:13)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사건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언제나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그 사건에 담겨 있습니다. 반면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에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셨을 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인간 예수만을 자꾸 떠올렸습니다. 그러한 선입관과 편견 때문에 예수님은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 사람이 어느 때 사람다워질까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늘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에 빠져 고통을 받고, 죽어가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상대방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나 창녀와 같은 그런 사람들만 불쌍히 여기셨을까요?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만 측은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공격하고, 예수님의 몸에 못을 박는 사람들까지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십자가 아래를 지나가면서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까지도 주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내 마음에 깊이 담아야 합니다. 오래 오래 주님의 이 마음에 대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은 악질 인간에게조차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을까?

주님은 기도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눅23:34)

저는 한 달 후면, 이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취임한 지 15년이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목사 안수 받은 지 20년이 됩니다.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나에게 하나님은 왜 이민목회를 맡기셨을까? 저는 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응답도 바랬습니다. 하나님은 쉽게 대답해주시지 않고, 오랜 시간 묵상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야만 그 맛이 제대로 드러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민목회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된 사람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들. 늘 기도에 힘쓰고 자신을 낮추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언제나 자기 중심적인 분들도 계셨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비난과 험담을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심지어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된 분까지도 그랬습니다.
항존직을 받아서 평생을 섬기겠다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긴 분들을 생각할 때, 저는 주님의 이 기도를 생각합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무 쓸모없고 자격 없던 저를 종으로 부르신 이유도 바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마음을 배우라고 이민목회를 맡기신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판단하고 비판하려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모른다고 거짓말하고 떠났던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서 다시 만나셨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예수님은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은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의미라고 해석합니다. 그렇게 세 번이나 물으신 다음에, 주님은 다시 시몬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런 마음이 예수님의 긍휼 아니겠습니까?
죄인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용서하며 다시 중책을 맡기시는 주님의 마음.

함께 동역을 했던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집어 넣던 사울이라는 인간을 예수님은 만나셨습니다. 그것도 그가 크리스천들을 잡아서 감옥에 보내기 위해 공문서를 만들어 다메섹(Damascus. 지금 레바논 산맥의 동쪽)으로 가던 길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하늘에서부터 그에게 비추었습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행9:4) 이런 악질 죄인 사울을 제자로 불러서 예수님은 그에게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런 마음이 주님의 마음,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심 아니겠습니까?

▷ 우리는 평생 주님의 이런 마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9:13)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은 자비심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내 잘못은 반성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자꾸 드러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나를 반성할 수 있을 때 신앙이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뻗지 않습니다.

(적용) 우리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나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노력하는 점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나 때문에 배우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기다려주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지나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조건을 달고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Not because~. 주님은 나를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십일조를 잘 바쳐서도 아니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드려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자격 없는 사역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일꾼으로 삼으신 이유는 우리를 그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 해서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신실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됩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서 제가 알던 어느 장로님은 자신이 그 교회에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한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그 분의 모든 신앙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는지, 그 은혜를 망각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고, 내가 신앙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비심 때문에 살아왔습니다. 자격없는 나를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험담하며 다니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저 분에게도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실까요?




[ 기 도 ]


하나님,
스스로도 죄인이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모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세리 마태를 하나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자신의 모자람과 형편없음을 아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제 저희를 만나주시옵소서.
우리도 죄인입니다.
우리도 환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게 하여 주소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마5:7)을 늘 기억하게 하여 주세요.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습관도 고쳐주소서.
기도해주고, 축복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