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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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유언(The last testament of David)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08-10 10:40
조회
73
08/06/2017

-박도영목사-

모든 사람은 일정한 때가 되면 생명을 마감하는 날을 반드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임종 직전에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유족에게는 실로 중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일생전부를 통해 깨달고 체험해 오던 것을 짧은 몇 마디의 말로 정리한 것이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그것을 유언이라고 한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유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첫마디가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다윗은 어떤 인물인가? 다윗 : 성경에서 예수님보다 그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는 인물. 우리는, 목동에서부터 왕까지의 그의 삶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청소년 시절, 16세에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고, 30세가 되어서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중 유다지파만의 왕으로서 세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38세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세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창세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오늘날 팔레스탄인에 해당하는 가나안 땅 상속에 대한 하나님의 이 약속도 아브라함 사후 500년이 지나서 이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물론 이 언약에 대한 진정한 성취는 메시야의 통치로 완전히 새로워질 새 하늘과 새땅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때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을 상징하는 그림자적 성격으로 이 언약은 다윗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런면에서 다윗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 땅위에 모형적으로 구현한 왕이기도 하다. 하나님앞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인물의, 인생전체를 통해서 체득한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새겨서 들어야 할말씀이 된다.

* 더불어, 이 다윗의 마지막 말은 사무엘 상하서에 대한 결론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들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따라서, 오늘 다윗의 이 마지막 말을 잘 경청해서 듣고, 내면화시킨다면, 과연 오늘 본문의 한 구절과 같이 돋는 해의 아침 햇살 같고, 구름 없는 아침같고, 비온 후에 움 돋는 새싹과 같은 인생으로서 큰 은총을 얻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절을 읽어보자.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다윗이 자기의 일생을 되돌아 보니, 자신은 그저, 이새의 아들로서 별로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다라는 것이다. 양치는 집안의 아들로서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었던 그런 목동이었을 뿐이었다라는 것이다. 더구나, 막내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기업과 장자권도 물려받을 수 없었던 그저 볼품없는사람이었을 뿐이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높이 들리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특별히 선택하사 기름을 부으
시고, 또 특별한 은총속에 사랑함을 받았다라는 것이다. 목동으로서, 더구나 막내였던 그런 보잘 것 없는 인
물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시어, 사사시대 350여년동안 주변의 여러 이방 민족으
로부터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괴로움을 당하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시게 하시는 왕으로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게 되는 데까지 인도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을 보면, ‘감사하라, 찬송하라’라는 말이 쉬지 않고 언급된다. 대표적으로 시편 136편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
함이로다...”.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서 부유케 하시고, 없고 천한 자를 들어서, 있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다‘라는 고백이 그의 시편에 한결같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분명하고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잠언서 16:18절은 말씀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또 잠언서 18:12절의 말씀이다. “겸손은 존귀의 길잡
이니라.”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겠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신앙의 대
선배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죄인중에 괴수니라.” 하나님앞에 자신의 죄성을 철저히 자각
하며 아무것도 하나님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던 바울의 실존적인 겸손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하나님앞에 어쩔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앞에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하염없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변화시킬 수 있고, 아무 기댈
것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또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내 마음의 간구와 소원을 들으실 수 있으시며, 그런 하나
님께서 또 당신의 이름을 위해 나를 축복하실 수 있다‘와 같은 겸손으로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
다. 또 그것이 피조물로서 유한성에 갇힌 인간의 실존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목동중에서도 막내 목동이었었다, 아버지도 기대하지 않았던 인생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셨다. 하나님께서 이런 천한 나를 그저 은혜로 사랑하사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셨다’라고 고백함으로 다
윗은, 그 초점이 자신에게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의 자랑은 자신이 소유한 어떤 것에도 있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 있었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
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한 없이 드러내었던 것이다.

*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7-29 말씀한다. “/...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의 인생이 하나님께 높이 들린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는가? 나의 일생이 솟아오르는 태양의 아침 빛같이
밝고 빛나는 인생이 되고자 소망하시는가?,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나님 여기 천한 사람, 별로 자랑할
것 없는 사람, 마음이 병든 사람, 죄악으로 뒤범벅이 된 사람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입혀주시
사, 하나님의 명성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나는 감춰지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길 원합니다.’라며 하나
님만을 나의 전부로 삼고, 하나님만을 앙망하십시오. 하나님은 다윗만 특별히 사랑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다
윗과 같이 행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도 다윗과 같은 그러한 고백을 할 줄로 믿는다.

*아무리 성격과 성품이 태어날 때부터 별로 좋지 못하고, 또 아무리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지적총명이 없을지라도, 다윗처럼, 한평생 주님을 사랑하고 살면, 다윗처럼 인생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 나를 높이 세우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름부으셨다. 특별히 나를 선택했다. 카리스마의 은사를 나에게 주시었다는 그런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즐거움과 기쁨은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고,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사용하시며, 없는 자를 부유케 하시며 강하게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명성과 그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언제나 믿음안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함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살면,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볼품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넘치는 은혜를 주시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감사가 넘쳐 흘러서 고백하고 또 고백했던 것이 시편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다윗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끊이지 않았고, 또 그러했기에, 그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더 베풀어 주시는 은혜위에 은혜도 더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 드러나게 되었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위에 은혜위에 또 은혜를 받아, 또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그것을 다시 한번 감사하는 것이 다윗이 시편들이다.

*우리의 인생과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고백하지 않는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또, 주기도문에서도 예수는 고백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건 사건별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구체적인 하루 하루의 일상을 살면 어려움도 많고 이런 저런 삶의 역경도 많은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그 하루하루, 또 하루하루의 삶을 지난 후,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구나,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감사가 나중에서는 범사에 감사함으로 이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은 말씀하지 않는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면 이 말씀에 비추어,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평하며, 원망하고, 저주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감사가 충만한 마음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흔히들, 우리가 다윗을 생각한다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왕, 혹은 군인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다윗은 자기를 가르켜,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자칭한다. 하나님께 대한 충만한 감사가 마음에서부터 진동하니, 그 마음의 진동함이 음악과 시로 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 마음에 중심에 있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심령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쁨과 평강이 내면의 저변에 깔려 있다. 그리고 그 기쁨과 평강의 흔들림이 찬양으로 절로 나오는 것이다.

*사실, 다윗이 왕과 군인으로서 전쟁을 통해 그 나라를 부강하게 한들, 그 나라가 얼마나 영원하겠는가? 어떤 역사가는 세계 지도는 100년마다 달라진다 말한다. 나라와 제국의 강성함은 다 한때 뿐일 뿐이다. 역사가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읊었던 시들, 또 그 시에 비파와 수금를 이용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던, 그 가사들이 시편이 되어, 오늘날 수십억의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과 힘과 격려를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흔히들, 영성이 건강하다. 혹은 영성의 사람이다라고 할 때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설교 잘 하는 사람? 아닌 것 같다. 성경지식이 해박한 사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보통, 찬양을 잘하는 사람이 영성의 사람라는 이미지와 가장 잘 부합한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내면속으로부터 부지중에 찬양이 입버릇처럼 나오지 않는 다면 어찌보면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성이 살아있는 사람은 길을 가면서도, 집에 있어도, 어디에 있던지 중얼중얼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감사가 그냥 중심에서부터 흘러나온다. 혹은 곤란과 환난중에 있을 찌라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도우심에 대한 간구가 찬양과 기도를 통해 흘러 나오는 사람이다._

*2절을 읽어본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은 지금 자기자신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살펴보니 어떠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자기 혀에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말씀이 혀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일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읽고 또,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혀에 있게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신명기 11장 18절 말씀이다.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수시로 묵상하고 배우며, 무엇을 보든 하나님의 말씀이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면,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형통하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1편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의 시편과 같이,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던 사람이었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는지, 다윗이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시편 119편을 한번 읽어 보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다윗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몇구절만 읽어 본다. 20절,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72절-“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97절-“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103절-“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74절-“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이와같이 마음이 상할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더니, 이제는 여호와의 영이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실 정도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더라도, 여호와의 영 곧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필요할 때, 필요한 말씀이 생각이 나고 깨닫게 된다. 특별히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부름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와 더불어 성령이 충만해야, 누구를 만나 무슨 대화를 하든지, 하나님이 그때 그 순간에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늘 수시로 기도하고, 영혼의 민감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해 말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다윗은 그와 같이 영혼의 민감성을 늘 유지하려고 애썼고 사모했기에, 그는 예수께서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도 미리 감지하여 깨닫을 수 있었고 또
그 깨달음을 시편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시편 110편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여호와가 있고, 내 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원수들을 굴복할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라고 하신다. 다윗이 말한 내 주는 누구인가?

*마태복음 22장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답한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다시한번 말씀하신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되겠느냐”는 식의 답변을 하셨다.

*곧 다윗이 말한 내 주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르키는 것이다. 다시말해, 다윗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후손으로서의 오심을 여호와의 영을 통해 미리 깨닫고 그를 ‘내 주’라고 표현하게 된 것임. 이처럼,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면, 부지중에 숨겨진 하늘의 비밀과 진리를 깨닫게 되고, 인생과 삶에 대한 통찰이 생기게 되며,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3절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이 말만을 꼭 찝어서 본다면, 다윗은 어찌보면 겸손치 못하게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 같이 보여진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평가하기를, 이스라엘을 공의로 잘 다스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백성을잘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자기한테 말씀하시기를 ‘네가 과연 그렇도다’라고 말씀 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가? 어떤 분은 네가 충성하고 있구나. 네가 수고했구나라는 느낌이 올 것이다. 또 어떤 분은 내가 이래선 안되지등등의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틀린 것일까? 곧,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통해 어떤 생각과 느낌이 오는데 대체로 그것은 양심의 소리이다. 그 양심의 소리는 대체로 옳은 것이다.

*다윗도 하나님이 자기의 양심과 이성, 그리고 감성을 통해서, 자기에게 뭐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냐면, ‘네가 공의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백성을 잘 다스렸구나’.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그 나라를 다스렸구나’라는 음성이 깨끗한 양심을 통해 생각으로 전달되었고, 감성적으로 그 생각이 전혀 거짓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기에, 이런 생각은 과연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물리적인 소리로서 말씀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대체로 하나님의 음성은 이렇듯, 물리적인 진동이나 파동의 흐름으로서의 귀에 들리는 소리로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깨끗한 양심과 감성의 바탕위에서 생각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자 한다면,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안에서 내면을 고요히 하고, 주님안에서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생각을 통해 들려오는 것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4절 말씀이다. “저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의 말씀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렸더니, 또, 항상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여, 감사로 충만했더니,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존중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참으로 놀라운 복을 주신다. “너는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의 밝고, 힘차게 쭉 뻗어나가는 햇살과 같고. 구름이 없는 상괘하고 시원한 아침과 같고, 비가 온 후의 새 풀에 내려오는 소망과 희망의 광선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인생 여정가운데 구름도 없이 화창하고 밝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길이 시원하게 트이는 그러한 은총을 보이실 것이다라는 것이다. 시편 84편에서 다윗은 이러한 인생에 대해 ‘시온의 대로가 열린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시84편 5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런 인생은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다. 사람과 막힌 담이 없다. 물질과도 막힌 담이 없다.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 이런 인생의 은총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5절,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그런데 그런 다윗의 복이, 자기 인생 자체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도, 대를 이어 자기 후세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한 복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세웠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경우에는 범죄하자마자, 그 왕위를 끊어버렸었는데, 다윗은 왕위가 멈추지 않고 나올 것이며, 더불어 그 아들중의 하나가 영원한 언약을 갖고 인류를 구원할 아들 예수께서 다윗 가문을 통해서 나오실 것이라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임. 내가 어찌 네 소원을 이루워주지 않겠느냐. 어찌 내가 너를 구원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부족함이 없이 만족할 만한 은총, 넘쳐서 더 구할 필요가 없는 은총, 자기 인생때에만 아침에 돋는 해 같고, 비온 후의 광선 같은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그 후손들도 그러한 은총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 그런 은총을 원하시는가? 우리 모두 받기를 원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니 될 것이다.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다윗처럼 행하면 된다.

이처럼, 다윗은 양치는 목동에서부터 높은 직위의 왕이 될 때까지, 그 과정 전체를 기회가 있을 때마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감사를 했다. 계속 계속 감사하는 중에, 인생이 솟아오를 태양과 같이 상승하였고, 쭉 뻗어나가는 햇살같이 인생이 펼쳐졌다. 물론,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는 이런 저런 역경과 어려움도 있었으나, 결국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지 않았는가? 더불어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찬송했다. 상황이 답답해도 찬송하다 보면 내면의 힘이 솟아 오르고, 기쁨이 차오르게 된다. 어려운 일이 많아도 이미 주신 은혜를 가지고 감사하다 보면, 감사도 풍성해진다. 다윗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하듯이 감사하며 찬양하며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도와 말씀 묵상에 철저히 헌신하며 산 사람이다. 묵상을 함에도, 그 묵상함은 더더욱 깊어져서, 하나님의 숨겨둔 비밀까지 자각하는 그런 묵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의로 백성을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기위해 자기의 왕궁을 크게 짓고 으시되고자 하지도 아니하였고, 어떻게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을가 그것을 고민하며 정의롭게 산 인물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을 별게 아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아까 말했지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대로 행한다면 관연 이와 같은 은총을 받으리라 믿는다. 과연 여기에 앉아 있는 모든 성도들이여, 다윗의 이 마지막 말을 깊이있게 명심해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앞에 행하여, 차고도 넘치는 큰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