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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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떠나라(Go with the Lord)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08-10 10:37
조회
228
(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7년 7월 30일

주님과 함께 떠나라。

( 마 28: 16 ~ 20 )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입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28:18-20) 수잔 파울러 우드링은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알란 오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 목적을 사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존재하며 이 세상의 행로를 걸어가는 이유다. 참된 인생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도달할 목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95%의 사람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한 번도 글로 기록한 적이 없으며, 글로 기록한 적이 있는 5%의 사람 중에 95%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존 맥스웰)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사명을 발견한 사람이 있고, 사명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꿈이 있고, 목적이 분명하고, 사명감에 젖어 사는 사람은 눈빛이 다릅니다. 시간 관리를 잘 합니다. 부지런하고 창조적입니다. 자신의 삶에 주도적입니다. 능동적입니다. 성취와 보람을 느낍니다. 리더쉽이 생깁니다. 도로에 많은 자동차들이
달리지만, 싸이렌 소리를 울리는 차에는 다른 차들이 양보합니다. 왜일까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자신의 천직을 발견한 사람이다”라고 토마스 칼라일은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어떤 일에 쓰임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신앙 생활을 하든, 결혼을 하든, 우리는 항상 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느냐고.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국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아,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은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때, 나는 쓸모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 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는 체험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될 신분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느끼는 황홀한 체험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이티 선교팀은 그 나라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Jezi renmen ou 제지 레멘 우)라고 말할 것입니다.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안녕?(Alo or Kijan ou ye?). 감사합니다(Mesi).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Bondye benni wu 본죄 베니우). 가장 많이 부르게 될 찬양은 <좋으신 하나님>
God is so good(Bonjye si bon본제 시 본) li si bon pou mwen(리 시 본 뿌 므엔)이 될 것입니다.

◈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살면서,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사명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외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도 단지 명령하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가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 영생 )을 주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이 5천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복음이 들어오자, 한국은
영적인 어두움에서 빛의 세계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한국에 들어오자 한국인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한국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그렇다면 가장 놀라운 이런 사건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사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에 미국 동부의 코네티컷이라는 도시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미국 내에 거주하는 한국인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모이는 모임을 KOSTA(코스타)라고 부릅니다.
Korea Students All Nations. 미국 청년들 중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명령인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이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살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뉴저지의 감리교 신학교인 드류신학교를 다녔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뉴저지에 있는 장로교 신학교인 뉴 브런스위크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집회 순서 가운데 미전도 지역에 대한 선교보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던 지역을 소개하는 가운데, 동쪽에 ‘아침의 고요한 나라’라고 불리는,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두 청년의 가슴이 뜨거워지며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 불을 끌 수가 없어서 씨름하다가,
그 모임에 참석한 지 2년이 지난 1885년, 배를 타고 인천 제물포 항구에 도착합니다. 한 사람은 26세, 한 사람은 27세의 청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단이 속해 있는 미국 장로교 안에서 <언더우드>라고 하는 청년이 복음을 전하려는 꿈, 비전을 한국에 품은 것입니다. 제물포 항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 두 사람은 갑판에 무릎을 꿇고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인천에 가면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는데, 그 탑에는 이 두 사람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이 땅에 도착하면서 기도했다는 그 기도문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 사방에 빗장을 푸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둠 속에 억압받고 있는 이 땅, 이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주시옵소서.”

2년 전 아이티에 처음 선교를 가던 날.
2015년 5월 17일 주일 밤, 시애틀에서 밤 11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Atlanta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뒤척거리면서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애틀란타 공항에 새벽 6:30분에
도착했는데, 발이 부어서 운동화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기 전까지, 애틀란타 공항 대합실 의자에 누워서 수면을 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 9시에 큐티를 했는데, 열왕기상 19장,
하나님께서 피곤에 지치고, 자기 연민에 빠져 죽고 싶은 심정에 빠졌던 엘리야를 위로하시는 장면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실 때, 바람 소리, 지진 소리, 불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주 작은 세미한 소리로 임재하시면서, 그를 격려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선교팀은 애틀란타 공항 내 음식코너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11시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로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비행기 안에 있든, 쪽잠을 자든, 시시 각각 드는 생각은 아이티 국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2년 전 아이티 공항에서 처음으로 김승돈 선교사님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 후끈한 더위가 느껴졌습니다. 김승돈선교사님은 곱슬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셨습니다. 반팔 티셔츠에 낚시용
조끼를 입고, 시장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 차림을 하고 계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우리를 승합차에 태우고 40분 정도를 달려서, 드디어 선교센터가 있는 중고등학교 건물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김선교사님은 우리 선교팀을 인솔해서 학교 인근 지역 동네를 안내했습니다.

아이티, 시티 솔레이의 거리를 처음 걸었던 기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동네는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가 풍겼습니다. 우리가 골목길을 걸어가자 수 많은 아이티 어린이들이 우리를 따라왔습니다. 우리 손을 잡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신발 없이 맨 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돼지들과 닭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집들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도 아이티 크리스천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면은 감동이었습니다. 무더위에
등에서 잠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에어컨 시설이 없습니다. 선풍기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바닥은 시멘트 아니면, 흙이 그대로 드러난 바닥이었습니다. 벽돌은 바람이 통하도록 얼기설기 쌓아 올렸습니다. 천장은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철판 덮개였습니다. 하지만 아이티 성도들은 얼마나 찬양이 뜨거운지 모릅니다. 악기도 없습니다. 마이크도 없습니다. 앰프도 없었습니다. 악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2010년 지진으로 인해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스포켄 시 안에 거주하는 시민의 인구가 약 20만명입니다. 이 인구 전부가 지진으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재앙입니까?

※이 사람들에게 가정 절실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구호물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국민들입니다. 그런데 가난과 굶주림은 늘상
있어 왔던 문제였습니다. 깨끗한 정부일까요? 아이티에는 지금도 군대가 없습니다. 군대를 만들면 그들이
무기를 가지고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정부, 강력한 정부를 국민들은 기대하지 않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들 한 가정 한 가정을 방문하여 전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자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본 죄 베니우(God bless you)라고 말하면, 그들은 큰 소리로
아멘, 아멘 하고 응답했습니다.

매일 고아원 하나씩을 방문했습니다. 고아원 아이들은 자신들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도 가난하여 버림받는 아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웃을 일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웃고 떠들며 신나게 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말을 그들은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행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 안에서 즐거워하며,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의약품, 먹을 식량, 속 옷, 장난감, 부채, 학용품, 티셔츠, 썬글라스, 돋보기, 물 등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과 나는 그러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 우리는 만나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손을 잡아주고, 같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포옹을 하기도 했고,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사진을 참 많이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영적인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살게 될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멀리 있는 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의 계획은 우리를 주님이 계신 곳에 초대하여, 함께 살며, 함께 기뻐하며,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곧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미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좋은 미래를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오늘 선교를 떠납니다.




2.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이 ( 보람 )되기 때문이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28:20)

여러분,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자유를 주셔서 맘껏 살아보라고 맡겨주신 기회이다.』
제가 사춘기 시절,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깊이 고민했던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집에서 보이는 나, 학교에서 보이는 나, 교회에서 보이는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나.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깨닫게 된 것이지요. 나는 죄인이라는 자각도 그 때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각성 때문에,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성경 몇 구절을 읽다가 또 다시 눈물이 나서 수건으로 닦고 나서 감정을 진정시킨 다음, 다시 성경을 읽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후회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모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요19:30)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를 깨달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 그것을 완수하셨습니다. 소명을 이루신 것이지요. 후회함이 없으신 생애였습니다. 보람있는 삶이었습니다.
전부를 다 주고도 행복하셨던 분입니다. 죄 많은 인간을 이해하셨고, 사랑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주님께서 온 몸으로 겪으셨습니다. 십자가 죄수의 고통을 의로우신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사셨던 것처럼, 보람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 순간을 살아도, 하루를 살다가 간다 해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각 자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
그 주님을 만났을 때에 우리는 내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우리는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후회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기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딤후4:7-8)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 그것을 성취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보람된 삶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도가 되어 전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전했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아가페 사랑의 불을 질렀습니다.

내 가슴에 주님의 사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그는 행복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니,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악했던 사람들이 선해졌습니다. 변덕스런 사람이 성실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꿈 없이 방황하며, 술 마시고, 마약하고, 문란하게 살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서 인생의 사명을 발견하자 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가장 의미있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애틀란타에 갔을 때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평소에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든 비극 중에 최악의 비극은 젊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75살까지 살아도 한 번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 여러분, 요즘 주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보아라, 나는 그를 병상에다 던지겠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죽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계2:21~23)

오늘 하루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산다면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품에 안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를 주님의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소망입니다.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어릴 적 교회 주일학교에서 참 즐겁게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 (1절) 나는야 친구되신 하나님과 푸른 초장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면서 단둘이서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면서 단둘이서 한없이 거니네.

(2절) 지나간 일들 내게 말씀하며, 앞날의 될 일 내가 들을 때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 믿으니 이 세상 천국같애.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 믿으니 이 세상 천국같애.

(3절) 나는야 친구되신 하나님과 영원히 다정하게 지내리
천지는 모두 없어진다 해도 우린 영원히 지내게 되리
천지는 모두 없어진다 해도 우린 영원히 지내게 되리 ♬
(나는야 친구되신)




[ 기 도 ]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 번 살고 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 인생길.
영화나 드라마는 다시 보기를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이 인생 길은 다시 볼 수도, 다시 살아볼 수도 없는 길임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알 수 없는 미래를 하나님은 아시기에 주님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오늘은 아이티 선교팀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 곳을 떠납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주님의 마음을 전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소서.
아이티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 할 말을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전하여, 그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여 주소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여 주시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 하여 주소서.
우리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시는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