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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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감사하는 이유(Reasons to be thankful in spite of our difficulties)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07-23 17:08
조회
643
(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7년 7월 23일

힘들어도 감사하는 이유?
( 벧전 2: 21 ~ 25 )



정채봉 시인이 쓴 『생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고통이 주는 유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썩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길밖에

▷ 입장을 바꿔 우리가 저 생선이라고 상상해봅시다.
내 온 몸 구석구석에 짠 소금이 피부에 닿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동실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추운지 치아가 덜덜덜 떨리고, 얼굴에 하얀 성에가 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생선을 썩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오랫동안 보존하게 해줍니다. 냉동상태로 이동하면 먼 곳에 가서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값을 제대로 받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자주 던지게 되는 질문은,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께도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도 끔찍한 십자가의 고통을... 분명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하셨던 그 아들에게.
어느 드라마, 영화를 봐도 주인공이 액스트라보다 훨씬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을 주요 타깃(Target)으로 삼고 공격합니다.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모범, 본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고, 멸시 받고, 무시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셨습니다. 나에게 주시는 저주라고 해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죄를 지은 우리에게 용서와 자유와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믿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서로 맞물리고 협력해서 결국 선을 이룬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8:28)

요셉은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가슴 아팠던 사건을 아름답게 해석합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50:20)

☞ 삶이 분명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 책임 )져 주시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랑에는 두 가지가 따릅니다. 책임과 지혜입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한 분들에게서는 이러한 성숙한 인격적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책임감이 약한 사람은 일하기를 싫어합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금방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책임집니다. 상대방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늙고 병들어도 끝까지 책임집니다. 성숙한 사랑에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랑에 행복이 깃듭니다.
상대방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책임감이 신뢰를 쌓는다면, 지혜는 기쁨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차이점은 그 책임감에서 갈라집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목자는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양들을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월급을 준다는 곳이 나타나면 오늘 당장 떠납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10:11~14)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의 어떤 것을 책임지실까요?

우리가 먹는 것을 책임지십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먹입니다. 산다는 것은 곧 먹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무책임한 부모를 만나면, 아기는 제대로 먹질 못합니다. 책임진다는 것은 곧 먹는 문제를 책임져 준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요10:9) 양이나 소가 먹는 풀이 곧 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떡 혹은 빵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6:35)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주신 것이 율법이고, 신약에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이나 복음은 인간을 살리는 하나님의 보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주의가 되어, 자기 만족을 위한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 곧 율법주의입니다.
보약을 잘 못 먹은 것이지요. 율법주의 신앙이 되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종교심과 의로움을 자랑합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눅18:11-12)

그래서 율법을 잘 못 먹으면, 자기 공로가 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신경질적이 됩니다. 비판을 잘 합니다. 남의 허물을 자꾸 들추어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복음이란 나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셨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벌은 하나님이 받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해서 나 대신 고통을 받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나는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부드러워집니다. 따뜻해집니다.
나 때문에 십자가 고통을 받으시는 주님을 보면서, 나는 용서받았다는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도 사랑해주신다는 감사가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도 덮어주고 싶습니다. 누가 실수를 해도 용납합니다. 날카롭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다 보면, 개성들이 강한 분들은 서로 부딪히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선악과를 따 먹어서 그렇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자꾸 따집니다. 팔을 걷어부치면서 우리 따질 것은 따져보자고 말합니다. 분별하자고 하는데, 사실은 상대방을 내 입장에서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은 피폐해집니다. 가뭄 때처럼 메말라 갑니다. 우리는 선악과 대신 생명나무를 먹어야 합니다. 생명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나를 조건없이 용서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면 병든 사람이 치유됩니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면 미친 사람도 온전해집니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밝아집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면 악했던 사람도 착해집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예뻐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면 신경질적이던 사람이 온화해집니다. 넉넉해집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면 표정이 밝아집니다. 친절해집니다. 섬기려고 합니다.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항상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교육자료) 뉴욕 시 교육위원회가 교육 자료로 쓰기 위해서 두 가정의 후손들을 5대까지 조사했습니다.
한 가계는 뉴욕에서 음란한 살롱 술집을 경영하여 부자가 된 맥스 쥬크의 후손이고, 다른 한 가계는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후손이었습니다. 조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했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5대 후손으로 가문이 이어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맥스 쥬크의 후손은 총 1,062명이 있었는데, 교도소 생활을 5년 이상 한 사람이 96명, 정신병자, 알코올 중독자가 58명, 창녀 65명, 정부 보조를 받는 극빈자가 286명, 학교를 다니지 못한 자가 460명, 사고로 연방 정부의 돈을 낭비한 금액이 1억 5,000만 달러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은 총 896명으로, 대학교 총장이 13명, 대학교 학장이 66명, 유명한 신문 주필과 논설위원 문학가가 75명, 주지사가 3명, 상원 하원의원이 4명, 부통령이 1명, 큰 사업가가 73명, 판사, 검사, 변호사가 103명, 의사가 95명, 발명가가 21명, 선교사나 목사가 116명, 그 외에도 저명한 분들이 많았습니다.(강준민, 성품 속에 담긴 축복의 법칙. P.328)

맥스 쥬크 가정의 안타까움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그 가정도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먹었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았다면, 그의 후손들 가운데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경건한 가정을 이룹니다. 기도하는 가정이 됩니다.
자녀들은 기도의 축복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도록 축복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평생을 책임지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자녀의 삶을 죽은 후에도 책임져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시23:1~3)




2. 인생의 짐도, 생활의 근심도 주님이 ( 맡아 )주시기 때문이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마11:28-29)

우리가 아이티(Haiti)에 선교가면서 1인당 50 파운드 가방을 두 개씩 가져갑니다. 여러분 한 사람당 50파운드 짜리 큰 가방 두 개, 개인 가방 2개까지, 끌고 갈 수 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무거운 짐들을 모두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짐을 부치는 일입니다. 항공사에게 맡기는 것이지요. 아이티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으면, 현지인들이 서로 자기가 그 짐을 나르겠다고 다툼이 일어날 정도입니다. 만약 외국인들의 짐을 잠시 날라서 팁을 받으면, 그 돈은 가족들이 하루 먹을 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하루에 5불 이내의 수입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가서 선교하는 지역인 시티 솔레이는 아이티 전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입니다. 우범지역입니다.

양은 무거운 짐을 질 수 없는 동물입니다.
양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세요. 둔합니다. 자기 몸 하나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들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쓰러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한 번 쓰러지고, 두 번 쓰러지면 잘 회복하지 못합니다.

부도를 맞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한 번 무너졌다가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입니다.
과거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분들은 그 상처로부터 자유해지고,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인생의 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받는 유혹 가운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은 유혹도 강렬합니다. 그러나 복수하려는 사람은 두 개의 무덤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상대방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내 무덤입니다. 이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께 내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인생의 짐을 맡기는 사람은 힘들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례) 디마스라는 분은 사업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잠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계속 망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계획에서부터 결재를 받는 것까지, 모두 주님께 의뢰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주님과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주님께 맡기고, 그 분은 전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망하고 있는 사업을 돌보지 않으니, 더 망할 것이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사는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사업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운영을 주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하기는 쉽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절대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믿을 바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믿어야 합니다.(김준곤 예화. 순출판사. P.53 )

“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시55:22)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5:7)

◈ 여러분 중에서 혹시 요즘 눈물을 흘리는 분이 있습니까?
전에는 잘 울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슬프고 힘들다고 느끼시는 분이 있나요?
여러분 중에 혹시 내려놓고 싶은데, 내려지지 않는 고통스런 짐을 이고 사는 분 계신가요?
여러분 중에 혹시 근심 걱정이 단 하루도 떠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 그렇다면 오늘 당장 예수님께 맡기세요.
예수님은 보관료를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맡겨도 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맡아주시려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짐을 내가 떠 안을 수 없습니다. 딸을 사랑하지 않으면 손자, 손녀를 봐 주겠습니까? 사랑하면 여하한 고생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의 짐 무엇이나 맡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짐을 맡겨도 되는 두번째 이유는 예수님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짐을 담당해 줄 수 없습니다. 은행이 튼튼해야 많은 예금을 보관해 줄 수 있습니다.
시큐리티(안전 장치)가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부실하면, 고객이 돈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무거운 짐을 지시고 사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 사람의 죄의 무게도 무거운데, 모든 사람의 죄를 모두 지셨으니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무거운 인류의 죄를 사랑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책임감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지고 죽어가시면서도, 힘들다고 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하다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2:22 ~ 24)

주님께서 그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셨던 것처럼,
오늘은 우리가 모든 짐을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겠습니다.




[ 기 도 ]


하나님
외로운 것도 힘든데, 가끔씩 저희들은 몸이 많이 아픕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가끔씩 속상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힘이 드는데, 이별 후 더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자식을 낳는 일도 힘들었지만, 양육하는 일은 더욱 힘이 든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돈이 없어서 힘들지만, 인간관계는 그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곤 합니다.

하나님,
혼자서 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저희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인생의 짐을 맡아주시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저희들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근심하지 말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힘들어도 많이 웃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와주면서
행복한 날들을 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