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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어떻게 할까?(How to best educate our children?)

작성자
admin1
작성일
2017-06-18 14:26
조회
302

(주일에 선포된 말씀)                                                     2017618

 

     자녀교육 어떻게 할까?  


 

( 18: 15 ~
17 )

 

 

 

지구상의 언어는 약 7,000, 종족은 약
24,000
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노벨상의 약 30%를 그들이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랍비들의 교훈중에서 자녀교육에 빠지지 않는 덕목 6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늘 생각하고, 또한 자녀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며, 자신들도 실천하려고 힘쓰는 덕목입니다.

 

첫째는, 배우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늘 의식하여 공부하는 것이지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바른 지식인가 되묻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환자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찾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 공부 잘하고, 혼자서만 승리감에 도취된다면 이기적인 인간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셋째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영접하는 마음이 덕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집이라면, 그 집 사람들은 분명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을 것입니다.

넷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알 때, 아름답고 선해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교만하다면, 무슨
덕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 덕입니다.

 

다섯째,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율법)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반복해서 교육하는 것이지요. 부모의 감정이나 인생 경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째는, 사람의 장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생각하고, 긍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의
단점을 생각하고, 어두운 면을 말하는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녀교육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시행착오가 많고, 수 많은 잘못과 실수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것이 자녀교육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도 자녀교육 문제만큼은 참으로

힘들어했습니다.
자녀교육을 잘못하는 흔한 유형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1)이삭이나 야곱은 자식을 <편애>했습니다.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이더니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25:28).

 

(2)엘리 제사장과 사무엘 선지자, 그리고 다윗은 <지나친
관용>
으로 자식을 잘못 교육했습니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삼상3:13). 그러나 그(사무엘)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삼상8:3). 그런데도 그의 아버지 다윗은

아도니야를 꾸짖지도 않고,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한 번도 묻지도 않았다. 그는 압살롬 다음으로 태어난 아들로서, 용모가 뛰어났다.”
(왕상1:6).

 

(3) <허영심>도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이스라엘(야곱)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37:3).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20:21)  

치맛바람은 이미 2천년 전, 유대 땅에서부터 불어왔습니다.

 

☞ 예수님은 자녀를 사랑하고, 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과잉보호도 문제입니다. 핵심은 자녀
사랑의 질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 한 명을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18:5).

 

 

 

1.    예수님의  (  사랑  )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자녀로 키우라.

 

 

 

사람들이 아기들까지 예수께로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보고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다.”(18:15-16)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너희가 직접 만나보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 부모들은 예수님이 자기 자녀를 만져주기를 바랐습니다.
아이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이의 손이라도 만져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입니다. 훌륭한 분을 만나게 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을 만날 때
성장합니다.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즐거운 캠프에는 자녀를 보내면서, 교회 여름성경학교에는 보내지 않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자녀는 재미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에게 위대한 만남을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녀가 만나도 되고, 안 만나도 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받는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건강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구원의
은총도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죄를 용서받는 기쁨도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절대적인 분입니다.

 

부모는 자녀와 평생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자녀를 길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자,

1년에 한 번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되었습니다. 자녀는 부모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부모도 자녀를 떠나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의 교육 또한 임시적일 뿐, 절대적이 아닙니다. 자녀에게
교육하는 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일정한 때가 지나면, 자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자녀에게 배워야 하는 때가 옵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교육은 내 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이것처럼 자녀에게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인격적인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자녀는 평생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나는 평생 함께 하지 못하지만, 주님은 가능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자녀라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할 때는 그 배우자의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집니다. 직장이 있는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인물은 좋은지.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는지. 집안은 좋은지. 그러나
결혼 생활 10년 정도 하고 나면, 그런 조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됨, 인격 그 하나입니다. 진실한 인격이면 다른 여건이 나빠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거짓말을 하고

배우자를 속이며,
회사 돈을 횡령하는 인격이라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성공이든

인격이 결여된 성공은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인격이 결여된 성공만큼 우리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도덕성이 없으면서 일만 잘 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할까요?

성공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인격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 진실한 사람. 순수한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자녀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그 사랑의 색과 모양도 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어린이는 언제나 안정감을 누립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녀는 자존감(
Self-esteem)이 높습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금방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8:10)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날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도 복을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고, 하나님은 항상 나와 동행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어린이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주님은 어떤 사람의 꿈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실까요?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37:4-5)

 

 

 

 

2.    자녀는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운다. 부부간에  (  다정  )하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8:17)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태18:2~5)

 

가정이든 교회든,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이유는 자신이 높아지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내가 옳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입장을 취하든, 옳은 것은 없습니다.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사람은 각 자 자신이 처한 입장이 있고, 관점이 다릅니다. 상대적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편다면, 일리는 있지만, 그 사실이 진리는 아닙니다. 따라서 각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깊이 사색하되, 내가 도달한 결론이나 신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신의 체면만을 우선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화평한 곳입니다. 화평한 관계입니다. 화목한 사람들의 특징은 부드럽고 겸손합니다.

자신을 낮출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수용성입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수용성이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포용합니다. 땅이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는 이유는 수용성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합니다. 땅은 가장 낮은 곳에서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한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까지 포용합니다. 까다로운 사람도 포용합니다.

거친 성격도 포용합니다. 연약한 사람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실수가 많은 사람에게도 용납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입맛이 까다롭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자기가 맘에 드는 일부분의

사람하고만 어울려 식사합니다. 교회에서 예배 끝나고 식사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이 좋고, 건강한 것이지요.

 

건강한 어린이는 편식을 하지 않습니다.

균형있게
먹습니다. 고기도 잘 먹고, 채소도 좋아합니다. 집에서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입맛은
어머니가 만듭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고루 음식을 먹도록 훈련하면 됩니다.

절제를 가르치고, 자제할 줄 아는 어린이로 훈육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먹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음식이든 잘 먹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그렇게 훈련시켰기 때문입니다.

단 한끼라도
불평하면, 그 날은 굶는 날이라고 합니다.

편식? 과식? 원망? 이런 것은
금물입니다. 항상 감사함으로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과 진리를 아는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하시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딤전4:3-4)

 

좋은 사례) 배운 것이 많지 않은 어느 평범한 유대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자식들을 대단히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딱 세 가지만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1) 어떤 경우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감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심지어 어려운
일이 닥쳐도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그저 감사해야 한다. 감사를
습관화해야 한다.

(2) 원망하는 사람과 놀지 말고, 사귀지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전염시킨다. 원망하는 사람과 사귀다 보면, 불평하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3)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감사하면 사는 사람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성공도 따라온다.

 

평범한 인생이지만 비범하게 사는 비결이 있다. 매사를 감사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나 누군가에게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는 비결은,
한 가지다. 감사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때 원망과 시비는 결코 없다.(김병태, 관점, 브니엘)

 

부모는 자격증이 없습니다.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밤샘 근무를
했다고 해서 보너스가 지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명입니다.

아무리 원해도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고, 부르심입니다.

  자녀를 부모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은 그 자녀가 좋은 모습을 보며 자라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귀로 듣고 배우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늘 아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딸, 아들은

본인이 이 다음에 결혼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습니다. 자연스럽습니다.

자녀교육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간단합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부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보는 앞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연극입니다. 연극은 한 두 번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자녀는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큰 울림은, 좋은 본을 보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례) 어느 장로님의 아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출석하던 교회에 분쟁이 생기자, 장로님들이 모여서 남의
흉을 보고, 헐뜯는 소리를 그 아들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충격이 되어서 그 아들은 일생 동안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을 칭찬하는 이야기,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이야기, 경건한 이야기를 꽃피는 것이 가족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남 흉보고 원망하는 이야기는 내 자식을 망칩니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자녀는 그 피해자가 됩니다.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격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고,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사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나쁜 유혹에 넘어갈 리 없습니다.

부부 관계가 좋은 분들이 교회 봉사를 할 때도 편안합니다. 어느
부서에 들어가든 분위기를 밝게 만듭니다.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누가 실수해도, 별 것 아닌 일이라고 하고

그냥 웃어 넘깁니다. 문제를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사람을 뜯어고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해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성격을
뜯어 고치려고 훈육하신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 각 자의 개성을 존중하셨습니다. 문제성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주님은 부모인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때도, 이래야 한다고
보여주십니다.

자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용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분명 성격 차이가 심하지만, 다정하게 지내는 것이지요. 많이 웃고, 여유롭게 산책도 즐깁니다.

부부가 1 2
여행도 자주 가는 것입니다. 음악도 같이 듣고, 드라마도
같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입니다.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위해주고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주의 종을 귀하게 여기면, 주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의 종은 성도를 귀하게 여기고, 날마다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유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 자를 이유없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각 사람을 조건없이 사랑합니다.

예뻐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고, 돈을 잘 벌어서도 아닙니다.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여름성경학교(VBS)가 열립니다.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한 모든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행복한 사건이 터지길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변함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쁨이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쓰다듬어주시고, 늘 감사하는
어린이가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자녀교육은 내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기 도 ]

 

하나님,

내 인생도 내 맘대로 하지 못했는데,

자녀의 인생을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로서 좋지 못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앞으로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모인 우리가 서로 아껴주고, 다정하게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이 천국 잔치에 참여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는 은총을 입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